▲김의환 충북대 교양교육본부 교수의 논문, <진천 평산 신씨 노비 가족의 존재양상>에는 자그마치 4세대의 노비 가계도를 소개한다. 여성 노비가 '성노리개'였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한국고문서학회
또 '여성 노비는 외거를 하더라도 양반의 지시에 따라 동침을 해야 하는 이른바 성노리개였다'는 김성회 전 비서관의 주장을 따져보자.
조선시대 노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예와는 다른 존재였다. 그들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고,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노비가 노비를 소유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특히 조선시대엔 평민인 양인과 노비인 천민이 혼인하는 '양천교혼'이 빈번했다. 15세기 후반 안동 권씨 집안과 16세기 후반 양동 손씨 집안의 노비 중 30%가 양인과 결혼한 이들이었다. 17세기 초 울산에서는 양천교혼율이 50%에 달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노비가 정말로 '성노리개'나 다름 없는 신분이었다면 양인과의 빈번한 결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노비 역시 '가계도'가 존재했다. 김의환 충북대 교양교육본부 교수의 논문 <진천 평산 신씨 노비 가족의 존재양상>엔 자그마치 4세대에 이르는 노비의 가계도 나온다.
가계도에는 90세의 노비 허농개가 양인 여성 엇덕과 결혼해 딸 인옥을 낳고, 인옥은 노비 난복과 결혼해 아들 일상과 선이, 딸 일개와 일춘을 낳았다. 장녀 일개는 12살 난 아들 무술과 6살 난 딸 진례를 낳았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정말로 여성 노비가 양반의 '성노리개'였다면 이런 가계도가 가능했을까.
특히 김지수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의 책 <정의의 감정들>에서는 18세기, 19세기로 추정되는 시기에 여성 노비 말숙이 죽은 남편의 토지를 빼앗은 남편의 친족을 관아에 고소해 남편의 땅을 되찾는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국가의 법 체계를 이용해 재산권을 행사한 여성 노비도 엄연히 존재했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 진짜 '불편한 진실'은...
김성회 전 비서관은 문제가 된 <제3의길> 기고 말미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구의 4~50%가 노비이고, 놀고 먹는 양반을 제외하면 겨우 20% 남짓의 사람들에 의해 지탱하던 조선사회. 그런 사회에서 누가 국방력을 담당하고, 근대화를 이룩할 힘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거기서 무슨 미래를 기대할 수가 있었겠는가? 국뽕에 취해서, 다른 나라에게 삿대질하기 이전에 우리 역사의 꼬라지를 제대로 알고 분노하더라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김 전 비서관의 주장은 '국뽕'을 경계하는 내용이라기보다 오히려 조선왕조를 폄하하기 위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것과 같다.
그는 12일 페이스북의 쓴 글 말미에서도 "두려운 것은 사회적·도덕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 언론들의 손가락질이 아니라, 안락함을 위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는 나의 비겁함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김 전 비서관의 비겁함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거짓을 어떻게든 '불편한 진실'로 둔갑시키는 데 있다.
동성애 혐오부터 일본군 '위안부' 폄하, 이제는 역사 왜곡에 이르기까지 거짓을 진실로 왜곡하려는 작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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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노비가 성노리개? 김성회의 왜곡을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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