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않으려는 마음'이 하는 일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고객님>
창비
저자는 이어서 폭언과 하대에 익숙해져있는 상담사들이 모욕의 무게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크게 2가지 실천, 물리적 중력을 거부하는 '몸펴기 운동'과 사회적 중력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이 탐색된다. '운동'이라는 공통의 낱말을 공유할 뿐 접점이 없는 듯 보이지만, 내 몸, 나아가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둘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지향을 공유한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몸펴기 운동을 통해 노동으로 발생하였으나 감춰졌던 통증을 드러내고 동료들과 공유하는 것. 노동조합의 몸자보 걸기, 집단적인 동시 이석 실천을 통해 모욕의 무게에 얼어붙었던 몸의 굴레를 깨는 것. 여전히 숱한 실패와 좌절에 맞닥뜨리는 가운데서도, 몸들의 단결과 연대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멸의 구조를 외면하지 않는 힘
저자는 책에서 여러 차례 "지고 싶지 않아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가 인용한 정희진의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 쓴다>의 서문에는 약자의 무기는 "적들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사고방식"에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약자의 시선으로 타인과 사회를 탐구하는 것이 이 무례한 시대에 지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우리에게 이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하는 일을 알려준다. 노동 현장에 작동하는 폭력의 구조와 이를 정당화하는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 노동자의 관점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 연구자의 '지지 않으려는 마음'은 그 구조 속에서 분투하는 노동자들의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발견한다.
그 마음은 다시, 대항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확장되어 더 많은 동료들에게서 지지 않으려는 마음을 일깨운다. 민원인의 폭언, 노동통제, 상담사들을 일회성 방패막이로 세우는 차별적 간접고용 구조, 경쟁 구도 속 동료들 간의 냉혹한 태도까지. 이 모든 것들에 결코 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마음은 앞으로 또 어떤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위험을 개별화하고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멸의 구조가 어느 때보다 견고해 보이는 시대에, 그럼에도 이 모멸의 구조에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모멸의 구조를 움직이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사람입니다, 고객님 - 콜센터의 인류학
김관욱 (지은이),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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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만들어낼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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