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4·19혁명 제2주년 기념식(군산사범학교 1963년 졸업앨범에서)
조종안
백효기씨는 1960년 12월에 치러진 도의회 의원선거에서 당선된다. 당시 나이는 쉰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첫 등원하는 날 "나는 일개 지방의원이지만, 200만 도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내가 죽는 날까지 4.19로 희생된 아들, 딸들의 혼을 머리에 이고 한평생을 열심히 살겠노라. 그리해서 그들의 한을 꼭 풀어주겠노라"라고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도의원 자격을 박탈당한다. 1961년 5월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가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 해산과 정당 활동을 금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초선 도의원임에도 장관을 지낸 김판술 3선 의원과 '막역지우'로 지냈던 백효기. 1963년 10월 어느 날, 군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윤보선 대통령 후보 지원유세 때 김대중, 박순천 등과 함께 연사로 나섰던 그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박순천씨와 같은 여성으로 외모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1960, 1970년대 각종 군중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그의 독설은 청중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군산 사람들은 그를 김옥선(장항·서천 지역 국회의원), 박순천(신민당 당수 및 고문) 등과 함께 한국 정치계의 '여성 트리오'라 칭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백씨의 연설에 "저 사람(백효기)이 만약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만인지상'으로 일국을 호령하는 지도자가 됐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청중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