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세계 각국의 불평등은 심화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바라본 강남구 청담동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그렇지만 이 시기에도 선진국들은 '복지국가' 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했고,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했다. 시장경제를 맹신한 선진국은 없었다.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 초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로 발전했다. 신자유주의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하여 미국이 역사상 최초의 '초강대국' 지위로 부상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쇠퇴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심지어 민주주의조차 위협받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사회는 양극화돼 "우리 시대는 분열에 의한, 동시에 분열을 조장하는 분노의 시대"(판카지 미슈라)로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 탄생, 서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득세에서 보듯이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 엘리트들의 부패에 분노하는 젊은 세대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철 지난 이데올로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불평등과 사회의 양극화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신자유주의)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에는 기여했으나, 금융업자와 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초래했고, 반복되는 팬데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후진 독재국가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철 지난 이데올로기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우는 나라가 있지만, 이른바 선진국 가운데 이를 표방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러시아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실험한 결과, 세상을 몽땅 바꾸는 새로운 독재와 약탈 체제가 생겨났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늘 상위 순번을 차지하는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윤석열 당선자가 '좌파'라고 비난한 문재인 정부는 보수 정부라고 하는 독일의 메르켈 정부보다 더 '우파'적이지 않은가.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어의 'demokratia'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demos(민)'가 'kratia(지배)'한다는 뜻이지만, 민이 직접 주체가 돼 다스린 역사는 거의 없다. 결국 소수가 민의 뜻을 앞세워 그들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앞세워 소수의 힘 있는 자들의 독재(금권 과두정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역사에서 작동했다.
자유민주주의와 결합한 시장경제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로서 칼 폴라니의 '사탄의 맷돌'처럼 공동체(사회)를 파괴하고 사회를 지탱해온 가치를 갈아 없애버리며 자본가에 의한 지배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선 '자유민주주의'는 군사독재를 정당화(미화)하기 위해 사용된 흑역사가 있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질서'란 말이 처음 들어간 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헌법이다.
전두환 5공 군사정부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명분으로 '북한 침략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보수주의를 표방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직접 언급하지 못한 이유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워 군사독재가 아닌 검찰독재를 할 의도가 아니라면 굳이 '자유'민주주의를 내걸고 이념 논쟁을 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성장주의 극복 못 하면 전 국민이 불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구시대적 성장주의를 국정철학으로 하는 한, "농업·어업·축산 정책과 그 예산을 대통령이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은 거짓말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윤석열 당선자는 초대 총리로 '뼛속까지 시장주의자, 개방주의자'라는 한덕수씨를 지명했다. 3농은 시장주의, 개방주의의 가장 커다란 피해자임은 말할 나위 없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경제장관들은 이명박·박근혜 시절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사람들로 채워졌다.
당선자의 공약과는 달리 3농의 험난한 앞날이 우울하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발효에 이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메가 자유무역협정(Mega FTA)이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3농은 태풍에 휩싸일 것이다. 시장주의 경제관료들이 공익형 직불금을 2배(2.4조 원에서 5조 원)로 늘리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대표 농정 공약조차 과연 지킬 것인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