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다영> 설계는 동자복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큰바다영>이 동자복을 바라보는 것 같다.
오창환
탑승으로 액땜을 한 덕인지 그 후 일정은 모두 순조로웠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도, 날씨도, 식당을 가는 것도, 주차장 사정도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는 듯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만족했던 것이 우리가 묵었던 <큰 바다 영瀛>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이곳은 사진작가 고영일(1926~2009)을 기리기 위해 그의 가족들이 만든 사진 갤러리다. 큰 바다 영은 제주도의 옛 명칭 영주(瀛洲)에도 들어가고 고영일 작가의 이름에도 들어가는데, 이 공간이 사진 예술의 큰 바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긴 듯하다.
사진 예술 공간 <큰 바다 영>은 건입동 주민센터 맞은편에 있는데, 제주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이 건물 바로 이웃에는 재물과 복의 신 동자복(東資輻)이 있다. 돌하르방처럼 생긴 이 미륵불은 옛 제주성의 동쪽에 있어서 동자복이라고 하고, 서쪽에도 비슷한 미륵불이 있는데 서자복이라고 불린다.
고영일 작가는 제주도의 자연과 생활 그리고 인물을 줄기차게 찍었다. 아버지 고영일 작가님이 돌아가신 후 아들 고경대 작가는 엄청난 양의 아버지 사진을 정리하면서 아버지가 사진을 찍은 그 자리에 가서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 작품들을 모아서 전시를 했는데 나도 그 전시에 갔었다. 나란히 전시된 아버지 작가의 작품과 아들 작가의 작품을 보면 말이 필요 없는 감동이 몰려온다. 어떤 풍경은 나무 하나 돌멩이 하나도 그대로인 곳이 있고, 어떤 곳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한 곳도 있다. 세월의 흔적이 두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사실 고경대 작가가 학교 선배라서 큰 바다 영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마지막 게스트이고 앞으로 게스트 하우스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족 사진작가 갤러리에서 가족 어반스케쳐스가 묵은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