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에서도 '인강'을 들을 수 있도록 평상시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시 사용을 허용하면 좋겠어요."
학교 교육이 코로나에서 벗어나 시나브로 정상화되나 싶었는데 느닷없는 '복병'을 만났다. 갓 입학한 고1 아이들조차 '인강'을 들어야 한다며 연일 아우성치고 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인강'은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수험생들과 재수생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어떻든 공부하겠다는 아이들의 바람을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일과 중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학칙을 개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는 학생회의 동의를 얻어 학급 담임교사가 등교 직후 일괄 수거한 다음 방과 후에 다시 가져가게 되어 있다.
분실 우려가 있어 학년 교무실마다 전자기기 보관 금고도 운영 중이다.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의 전자기기를 매일 수거하고 분출하는 건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다. 그런데도 일과 중 전자기기의 휴대를 금지한 건 소지가 허용되던 과거에 워낙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무선 이어폰을 낀 상태에서 딴청을 피우는가 하면, 친구들끼리 SNS를 주고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도촬'과 '녹취'도 서슴지 않은 경우마저 있었다. 기실 일과 중 전자기기 사용이 금지된 지금도 별도로 '공기계'를 챙겨와서 몰래 사용하는 아이가 적지 않다.
이를 모르지 않는 아이들은 스스로 '조건'을 내걸었다. '인강'을 듣는 것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다가 적발되면 전자기기를 일정 기간 압수해도 좋다는 것이다. '공기계'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학부모까지 끼어들어 불필요한 갈등이 유발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학칙의 상위법인 학생인권조례에는 아이들의 전자기기 소지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교육활동과 수업권 보장을 위해 민주적이고 합리적 절차를 거친 학칙으로 사용을 규제할 수 있다고 덧붙여놨을 뿐이다.
과거의 개인적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수업에 집중하는 경우는 거의 보질 못했다. 모두 스마트폰을 끄고 가방 속에 넣게 한 뒤라야 비로소 고개를 들어 서로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매일 야간자율학습 시간 고3 교실의 풍경
어쩌면 '인강'을 듣는 대신 몰래 게임을 하고 SNS를 주고받는 건 지엽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인강'에 몰입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다. 모두가 책상에 앉아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시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는 매일 야간자율학습 시간 고3 교실의 풍경이라 딱히 새삼스럽진 않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시를 거치대에 세워놓고 나란히 앉아 똑같은 자세로 미동도 없이 쳐다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뭇 기괴하기까지 하다. 칠흑 같은 밤 섬뜩한 고요 속에 교실의 조명만 대낮같이 환하다.
아이들은 예습도 복습도 '인강'으로 한다고 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즈음엔 교과별 시험 범위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맞춤형 수업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에겐 '인강'이 수업의 표준이었다. 선생님들 모두가 '인강'처럼 수업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근래 들어 '인강'을 들으며 수업 준비를 하는 교사들이 부쩍 늘었다. 학년 초 교과서와 함께 받게 되는 교사용 지도서는 '퇴물'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이따금 발표 수업을 하는 경우 보고용 수업지도안을 작성할 때나 잠깐 활용될 뿐 꺼내 보는 교사는 거의 없다. 거칠게 말해서, 이른바 '1타 강사'가 진행하는 수업을 흉내 내기 위한 연습이 곧 수업 준비다. 설명 방식은 물론, 복장과 말투까지 닮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공교육은 사교육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인식도 이런 현실에서 비롯됐다. 솔직히 아무리 발버둥쳐도 학교 수업은 '인강'을 따라갈 수 없다. 교사의 자질과 역량 차이라기보다는 조건과 환경의 차이다. 수업의 조건도 다르고, 공고한 학벌 사회라는 환경은 사교육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더욱이 '인강'을 흉내내기 급급한 수업이라면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인강'을 따라 할 거라면 더는 학교 수업이 필요 없다. 수업 시간에 대형 프로젝션 TV로 '인강'을 반복해서 보여주면 된다. 어차피 '인강'처럼 수업해달라고 요구하는 마당에 '사본'보다 '원본'이 더 나을 것이다.
'인강'이 점령한 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