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버겁다 신호를 보내고, 끊임없는 자책과 후회에 괴로워하면서도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다.
envato elements
내 마음을 흔드는 게 어디 커피와 식욕뿐일까. 건강검진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걱정이 되면서도 야식에 마음이 동하고, 이젠 무리인 줄 알면서도 화제가 되는 드라마라면 밤새 몰아보기를 무릅쓰기도 한다. 신체적 제약은 점점 늘어가는데, 뭔가를 탐하는 욕구와 욕망은 나이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세월 욕구와 욕망을 따르고 난 후, 몰려오는 자괴감의 후폭풍이 쌓이다 못해 진절머리가 날 때쯤, 어느 순간 '아, 내가 참 어리석구나!'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 몸이 버겁다 신호를 보내고, 끊임없는 자책과 후회에 괴로워하면서도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이제 그만 어리석고 싶었고, 의미 없는 자책과 후회로부터 훌훌 헤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미묘한 마음의 변화가 슬며시 일어났다. 그 작은 마음이 점점 분명해지더니 신기하게도 욕구에 휘둘리지 않는 일이 간간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커피 효과가 절실해도 허브차를 선택할 때가 한두 번 늘어나고, 식욕이 회오리처럼 일어나려 하면 슬며시 산책으로 관심을 돌리는 연습도 시도해 보곤 한다.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욕구와 욕망을 비껴가는 법을 천천히 익혀가는 것 같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욕구와 욕망을 알아차리는 힘도 제법 생기는 듯하다.
돌이켜 보니, 공자님이 말씀하신 '불혹'의 의미를 이제는 좀 알 것도 같다. 마흔이 되었다고 저절로 유혹에 강해지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유혹들에 끝없이 넘어가 셀 수 없는 자책과 좌절의 성찰 끝에 얻어지는 '마음의 중심잡기'가 '불혹'이고, 이것이 가능해지는 때가 공자님이 살던 시대에는 마흔쯤이었다는 의미인가 싶다.
50이 다 된 나이에야 마음의 중심잡기를 의식하고 연습하게 되다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수명이 100세로 늘어난 시대임을 감안하면 10년 정도 늦어도 괜찮지 않을까. 결국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제약들이 자꾸 생기는 건, 이런 저런 욕구와 욕망에 휘둘려 심신을 혹사시키지 말고, 마음의 중심을 잡고 겸허하게 살아가라는 몸의 신호이렸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공유하기
공자가 말한 '불혹'의 의미, 50이 되니 알겠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