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8일자, 자치경찰제를 다룬 <경향신문>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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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검찰이 구사한 대응 논리 중에서 인상적인 두 가지가 있다. 그 둘을 살펴보면, '한국 검찰은 자신의 과거를 쉽게 잊는 망각의 존재'라는 인상을 준다.
집권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김대중 대통령도 공감을 표시했지만, 검찰은 '절대 불가'라며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러면서 내세운 대응 논리 중 하나가 인권보호였다. 위의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5월 7일 김태정 검찰총장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오히려 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옳지 않다"면서 "수사권 독립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 신문 22면에서는 검찰의 입장이 좀 더 직접적으로 소개됐다. 경찰이 수사권을 갖게 되면 국민 인권보호가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또 검찰은 "한마디로 국민의 인권보호와 민주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있을 수 없는 발상"이라며 "경찰의 자의적인 권한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이 없어져 국민인권 보호에 심각한 구멍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권의 전면 조정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논의되는 2022년 지금도 인권보호 논리가 대응 논리로 구사되고 있다. 이달 20일 나온 전국평검사대표회의 입장문은 "국민들께서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대다수의 민생범죄, 대형 경제범죄 등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들로부터 국민을 더 이상 보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한 뒤 이렇게 주장했다(관련 기사:
평검사들, '문 대통령이 내준 숙제' 풀까 http://omn.kr/1yfxx ).
"검수완박 법안은 검사가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게 만들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검사의 판단을 받고 싶어 이의를 제기해도 검사가 이를 구제할 수 있는 절차를 없애 버렸습니다. 구금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오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와 인권침해가 큰 압수수색 과정에서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까지도 없애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수사권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들은 경찰과 검찰의 합작 혹은 상호 묵인에 의해 일어났다. 검찰이 독자적으로 양산해낸 인권침해도 많고,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이 경찰을 제대로 견제하지 않아 발생한 인권침해도 적지 않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법원에 넘기는 중간 단계인 검찰이 인권보호 책임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경찰로 인한 인권침해는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금 추진되는 검수완박은 검찰을 견제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제까지 수사권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두 기관을 따로 떼어놓는 의미도 있다. 경찰 역시 당연이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간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전제되지 않는 검찰의 경찰 비판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 것이다. 1999년에 검찰이 구사한 인권보호 논리는 그런 점에서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인권문제, 자질문제... 검찰, 경찰 탓할 위치에 있나
인권문제와 더불어, 검찰 혹은 친검찰 진영이 구사한 또 다른 논리는 '경찰관 자질' 문제였다. 경찰이 과연 독립적으로 수사를 담당할 역량이 있느냐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1999년 5월 8일자 <경향신문> 사설은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 간의 대립은 지난 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정치·사회적 변혁기 때마다 불거져나왔다", "논쟁의 대부분은 검찰의 지휘에서 벗어나려는 경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으나 번번이 아무 소득도 없이 끝나고 말았던 게 사실이다"라고 한 뒤 다음 두 문장으로 글을 끝맺었다.
"경찰의 자질 향상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논쟁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수사권과 관련된 자질은 수사권을 가진 조직의 집단적 역량에서 일차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관한 역량을 평가할 때는, 경찰관보다는 경찰 조직을 먼저 살펴보는 게 순리다. 경찰 조직이 수사에 필요한 조직력과 정보력을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경찰관과 검사 중에서 누가 더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는가는 이차적인 잣대다. 수사권과 관련된 조직적 역량을 감안하지 않은 채 경찰 자질론을 퍼트렸다는 점에서 당시의 친검찰 논리는 설득력을 지니기 힘들었다.
그래서 자질론 시비에 대한 불만이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도 제기됐다. 일례로 5월 7일자 <동아일보> 7면에 따르면, 한광일 총경은 "검찰은 으레 수사권 독립과 관련해 경찰의 자질 문제를 거론한다"고 불평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자질 문제를 부각시킬 만한 돌발 사건이 일어났다. 검찰 특수부가 경찰청 국장을 수뢰 혐의로 구속하는 사건이었다. 5월 20일자 <조선일보> 1면 우중단은 "서울지검 특수2부(부장 김인호)는 19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던 아파트 관리업체로부터 수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22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청 박희원(57) 정보국장을 구속 수감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