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라고 다 같은 필사는 아니지요
언필래시
당신은 어떤 필사를 하고 있습니까
글 쓰며 오는 답답함에, 잘 쓰고 싶다는 허영심에 쓰기 요모조모를 기웃거려 보신 분은 알 거예요. 필사하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닮고 싶은 작가가 쓴 책 그대로 베껴 써 보라고요. 짙은 독서를 위한 필사가 아니라 나아진 쓰기를 위한 필사 말이에요.
부러 둘을 구분 지어 설명하는 건, 같은 필사지만 성장 독서를 위한 필사와 성장 쓰기를 위한 필사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둘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책이 좋아, 구절이 좋아, 작가 생각이 좋아, 책 전체가 좋아 필사하는 건 독서를 위한 필사에 해당합니다. 옮겨 적으며, 책 내용을 한 번 더 곱씹는 과정일 테죠.
눈으로 훑는 것에 그쳤을 때보다야 훨씬 많이 남을 테고요. 쓰며 스스로 정화하기도 하고요. 독서 필사는 이런 일이에요. 작가님 텍스트로 전달한 지식, 정보, 감각, 깨침 등을 한 겹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
반면 쓰기 필사는 '한 권의 끼적임'이라는 행위는 같지만 다른 의도와 의식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릅니다. 쓰기 필사는 작가 글을 구교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쓰기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시원시원하게 써나가고 싶지만 머뭇거리게 되는 시간이 많아, 혹은 쓰다 중간에 포기하는 날이 잦아 필사를 찾습니다.
그도 아니면 누구 작가처럼 쓰고 싶다는 바람에, 조금 나아지고 싶다는 욕심에 베껴 쓸 책을 찾죠. 그러니까 오직 '글쓰기를 배우겠다'는 다짐으로 한 필사라는 겁니다. 독서 필사랑은 필사를 대하는 의도나 의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따금 성장 쓰기를 위한 필사를 하신다고 해놓고, 성장 독서도 아닌 받아쓰기 격 베껴 쓰기를 하시는 분을 봅니다. '글 솜씨를 키우겠다'는 의식이 쏙 빠져있었는데요. 오해가 있으신 듯했습니다. 그저 베껴 쓰면 되는 줄 알던 오해 말입니다.
이것은 학창시절 동영상 강의 듣던 것과 비슷합니다. 분명 나는 자리에 앉아 강의 한 편을 봅니다. 50분이 흘렀고, 한 강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따금 집중을 잃었지만 어쨌거나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들었고요. 들었고요, 그러니까 그냥 들었고요. 그저 봤고요. 결과적으로 내 것이 된 지식은 거의 없을 테고요. 마찬가지로 필사 열 번 해도 글이 잘 늘지 않는 분이 있다면 그래서일 겁니다.
필사를 하려거든 음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