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발의된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김승원 의원 등 11인)' 내용. (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사서들은 단지 도서관 운영비용이 늘어날까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라면 운영비용의 증대가 예민한 문제일 수 있으나 공공도서관은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게다가 저작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자료를 다루는 사서들이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지 않겠나.
그런데도 도서관계 일각에서 공공대출보상권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들이 나오는 것은, 이 개정안이 도서관 설립 취지와 이용자의 권한을 상당히 침해할 것이 분명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창작, 출판계의 이익을 위해 내세운 듯한 적절치 않은 개정안 제안 이유와 두루뭉술한 개정안의 문구들 때문이다.
개정안 제안 이유를 보면, 제도를 도입한 다수의 '세계 선진 저작권 국가'에 미국, 일본 등은 빠져 있다. 그런데도 "세계 선진 저작권 국가의 경우에는 저작권자와 출판계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위하여 일찍이 공공대출보상제도를 도입하였으며 독일, 영국 등 세계 34개국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써서, 마치 한국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들은 일찍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처럼 오인할 수 있게 서술돼 있다.
또한 개정안에는 공공도서관이 대가를 받지 아니하고 대출한 도서 등에 '상당한 보상금'을 지적재산권자에게 지급하여야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급에 필요한 비용 전부 또는 일부를 도서관 등에 지원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상당한 보상금'은 대체 얼마인가. 나아가 문체부장관이 지원한다는 비용은 '전부 또는 일부'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바람에, 단 1%만 지원한다 해도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만약 그 경우 나머지 99%는 누가 지원하는가?).
법안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서관 예산의 단 10원도 손대지 않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개정안의 모호한 단어들은 그 장담에서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두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정안이 나온 뒤, 우민화 정책 일환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것은 공공대출보상권 도입이 결국 자료 구매예산 축소 또는 자료 이용의 유료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공공도서관 운영예산 축소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는 도서구입비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지식 접근의 제한을, 동시에 이용 비용 부담을 발생시킨다.
공공도서관은 정말로 출판계 권리를 침해했나
그렇다면 정말로 공공도서관이 창작, 출판계의 권리를 침해하여 재산적 손실을 끼쳤을까?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첫번째. '읽히지 않는, 인기 없는 책은 누가 구매했을까'다.
전국 공공도서관의 수는 약 1130개, 학교도서관은 1만 1700개에 육박한다. 대학, 특수, 전문, 작은 도서관 등등까지 합하면 2만개에 가깝다. 도서관에는 '주제별 장서 구성 비율'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기도서는 물론 흥행성이 적은 책들도 내용이 좋으면 도서관에 비치한다. 이용자들은 주제별로 정리된 책들을 도서관을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이렇게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을 최소한이라도 소화해 주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 이용자들은 읽고 싶은 책이 대기가 길거나, 책이 두껍거나 하다면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읽어보니 내용이 좋아 소장하고 싶은 경우에도 구매로 이어진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책 구매율도 높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도 밝혀져 있다. 이를 보면 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려봐서 구매율이 저조하다는 책은 도서관에 없어도 구매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두번째. 사서들은 책 마케터인가.
도서관에서는 사서들이 이용자들을 위해 많은 행사를 기획해 책의 세계로 이끈다. 오죽하면 공공도서관 사서의 업무 스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분류 능력이 아니라 행사 기획 및 진행력이라 하겠는가. 독서교실 등 다양한 책 관련 행사 기획 및 진행은 기본, 이용자 취향별 북큐레이션은 추가 옵션이다. 이용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도서관의 행사만큼 순수하고 열정적인 도서 광고 행위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사서들이 마치 이벤트 회사 직원처럼 책을 열심히 홍보해도, 그걸로 출판사와 작가에게 비용을 청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가들은 강연회를 하면 강연료를 받아간다. 사람들이 독서에 소홀할까봐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려 안달인 사람들은 출판사와 작가들보다는 도서관 사서들이 아닐까.
보통 대부분의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부모와 손잡고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공공도서관의 어린이실이다. 그로부터 한 사람의 생애 주기 내내 도서관이 늘 곁에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 조건 없이 말이다. 논의에 앞서 이 점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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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무료 대출로 손실, 보상해야"... 이 주장의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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