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마을 최고 원로 냥이 관우
노일영
어쨌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유비·관우·장비 이렇게 삼 형제였다. 하지만 4년 전 장비는 허피스바이러스(일명 고양이 감기) 2차 감염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삼국지의 내용처럼 관우가 먼저 형제들의 곁을 떠날 것이라고 늘 예언했지만, 죽음의 순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법이다.
갑작스러운 이별
사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원로 냥이는 세 마리였다. 코숏 중 '카오스'에 속하는 '청산'이가 유비·관우와 함께 마을에서 잘살고 있었다. 자매인 '나비'는 몇 년 전 마을에서 갑자기 사라졌지만, 청산이는 죽음의 그림자를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다. 자매의 이름은 시조인 '나비야 청산가자'에서 따왔다.
어쨌거나 이 청산이가 마을에서 사라진 건 온전히 남편 탓이다. 남편이 읍에 볼일이 있어서 1톤 트럭을 타고 내려갔는데, 적재함에 청산이가 타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 싸늘해지기 시작하면, 냥이들은 햇볕을 받아 따듯해진 트럭의 적재함에 드러누워 있길 좋아한다.
내가 남편에게 누누이 이 얘기를 하면서, 트럭을 운행하기 전에 적재함을 꼭 확인하라고 주의를 줬는데도, 이 인간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차를 출발시켜버렸다. 목적지에 도착한 남편이 차에서 내렸을 때, 청산이는 적재함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당황한 남편이 어, 어, 하면서 이름을 불렀지만, 청산이는 적재함에서 뛰어내려 읍에 있는 야산으로 도망쳐 버렸다. 남편은 볼일도 보지 않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마침 나는 주차장 근처에서 냥이들에게 사료를 조공하고 있었다.
"저기, 저. 혹시 청산이 마을에 돌아왔어?"
"그게 뭔 소리야? 어디 따뜻한 데서 놀고 있겠지."
남편이 내 눈치를 살피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청산이는 내가 귀농했을 때 갓 태어난 냥이라서 애지중지하며 모시던 녀석이었다. 내 눈빛에서 뭘 봤는지 남편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하며, 청산이를 찾는답시고 허둥대다가 냥이들의 밥그릇까지 뒤엎고 말았다.
그날부터 일주일 내내 강제 이주된 지점에서 서성이며 이름도 부르고, 야산을 간식으로 촘촘히 포위도 해봤지만 끝내 청산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청산이가 좋은 집사를 만났기를 기원할 뿐이다. 청산이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었지만, 남편을 들들 볶지는 않았다.
그때쯤에는 길냥이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조건에서는 인간의 사소한 친절조차도 냥이에게 시시각각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현상은 어제는 안전 요소였는데 오늘은 위험 요소로 변할 수도 있어서, 길냥이에게 주어진 삶이란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규정을 만드나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규정이 좀···."
총무계장은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어떤 일이 있어도 밀어붙이려고 마음먹은 터라, 총무계장의 반응에 공감하며 물러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 도로의 가로수인 산수유나무 그늘 밑에서 어르신들이 자주 쉬신다구요. 그런데 내리막길이라 어떤 차들은 거의 70km 정도로 미친 듯이 달린다니까요."
"이장님, 그건 잘 알겠는데요. 근데 내리막길에는 규정상 과속 방지 턱을 설치하는 게 어려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과속 방지 턱 문제로 대화했을 때도 총무계장은 똑같은 말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