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교 급식 조리실 모습
연합뉴스
10분쯤 지나자 급식차가 왔다. 원래는 급식차를 엘리베이터 앞에 쭉 줄 세워놓는데 이번에는 하나하나 교실까지 가져다 주셨다. 얼마나 급히 오셨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반에 들어오셔서 아이들에게 허리 숙여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현수를 포함한 아이들은 약간 머쓱해했다.
아이들과 함께 괜찮다고 밥 맛있게 잘 먹겠다고 인사드리고 먹기 시작했다. 다 먹고 급식 정리까지 마친 즈음에 민호(가명)가 내 자리로 왔다.
"근데 되게 이상한 것 같아요. 일부러 하신 것도 아닌데 사과하시는 게."
1, 2학년은 12시 반이면 수업이 끝난다. 그 전에 400인분을 만들어야 한다. 1시쯤이면 남은 네 학년의 점심시간이 시작되니 그 전까지 800인분을 만들어야 한다. 1200명이 넘는 사람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하는 급식실 조리 담당 인원은 9명이다. 한 사람당 130인분 가량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면서 조리실 옆을 지나간다. 그때마다 조리실 불은 환하게 켜져있다. 급식실 신발장에는 벌써 신발이 여럿 차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도 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 5명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데만 빠르면 30분, 평균 1시간은 필요하다. '일이니까 당연한 의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1명'이, '약 4시간' 만에, '130인분'을 '매일' 만든다고 생각하니 갑갑해진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는 한 번의 실수나 한 명의 결원도 마음 편히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허리 숙여 사과했던 급식실 조리사님을 떠올린다. 실수 한 번도 수습이 급한 매일을 보내는 건 어떤 느낌일까. 시간 맞춰 1200인분을 만들어야한다면, 나는 오렌지 박스를 들어 올리다 허리가 아파도 쉴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고 학교 사정도 비슷했다. 확진자가 나와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 확진도 많아져 원격수업으로 전환되거나 전담교사가 담임 수업을 대체하는 경우도 잦았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겨우 봉합해가며 학교를 유지해갔다. 코로나19 관련 알림이 너무 잦아 메신저 알림의 제목만 읽기 시작할 때쯤 빨간 글씨로 '중요'가 붙은 알림이 왔다.
'영양사 OOO입니다. 조리실무사 코로나19 양성 판정으로 인해 다음주 3일간 대체식으로 운영됩니다. 변경메뉴는 다음과 같습니다. 월요일: 카레, 깍두기...'
조리실무사 중 두 명이 확진됐고 학교는 3일 동안 OO라이스를 먹었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오리간장라이스. 코로나19가 조리사는 피해가며 퍼지는 건 아닐 테다. 문제는 두 명의 여유도 없는 급식실 현장이다. 두 명이 빠지면 운영이 안 된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국민 모두가 체감하는 재난이어야 대체식으로 변경된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누군가 아파서, 상을 당해서 대체식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하루 아프다고 인원이 충원되지는 않는다.
나는 오늘 급식으로 뭐가 나오는지 다시 생각한다. 현미밥에 달래된장국, 김치, 소불고기, 도라지나물이 나온다. 아니, 오늘 급식으로는 퍼트리는 병이 아니라 쉬지 못하는 허리디스크를 가졌고, 손목과 무릎이 아파 한방 파스를 자주 붙이는 9명의 조리실무사님의 노동이 나온다. 오늘 무슨 반찬인지 50번은 얘기하는 우리 반의 활기는 그들에게 온전히 기대어있다. 이렇게 중요한 그들의 식사, 편의, 쉴 권리는 어디에 기댈 수 있나.
제일 맛있는 반찬은 뭘까? 새우튀김? 돈가스? 가자미튀김? 나는 확신한다. 권리를 보장받는 사람이 만든 반찬이 제일 맛있을 것이다. 무거운 냉동 새우를 직접 옮기다 허리를 삐끗하지 않고, 돈가스와 가자미를 튀기며 매캐한 연기를 가득 마시지 않아도 되는 학교. 아프면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고, 무거우면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기 시설이 잘 되어있는 조리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점심을 먹고 싶다. 가장 맛있는 점심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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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늦은 날, 허리 숙인 조리사... 아이가 "이상하다"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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