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권우성
- 가장 눈에 띄는 이력 중 하나가 '와글' 설립입니다. 시민들의 정치 의사 과정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는 동시에, 청년 정치인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이곳을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노동운동 한다고 구로공단에 있다가 취업할 시기를 놓치고 30대에는 방송 작가를 했어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소위 386이라는 데 자부심이 있었어요. '못 살면 어때, 떳떳하게 살았잖아'라고 생각했는데, 40살 유학 갈 무렵에 보니까, 자괴감이 들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우리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 너무나 쉽게 기득권층으로 편입되어 갔고, 정치권에도 많이 들어갔는데 왜 이런 결과밖에 못 내고 있나 싶었죠.
유학을 가서도 마음 속 화두는 하나였던 것 같아요. 80년대 운동은 왜 더 이상은 계승되지 못할까. 80년대 운동은 왜 그걸로 끝났을까. 그래서 논문을 시민운동의 변화에 대해서 썼어요.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까 제 나름 내린 결론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초보적인 발대기일 수는 있으나, 2000년 이후에도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어요.
이제 의사소통 방식이 달라졌잖아요. 중앙집권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성에 입각한 네트워크 형태로, 탈중심적이고 다양성을 최대한 키우면서 여기저기서 변화를 위한 운동들이 벌어지는 게 진보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 와서 그런 방식의 시민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과거 동지들을 찾아갔더니 너무 대화가 안 됐어요. 제가 하는 얘기랑 너무 동떨어져 있고, 제 이야기를 듣고 '네가 정치를 몰라서 그래'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시에 쓴 책 제목을 그렇게 (<듣도 보도 못한 정치>) 단 거예요. 이제 같이 일할 수 있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싶었고,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변화의 동력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것 같아서 그 친구들을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거죠."
- 와글 출신 청년 정치인은 누가 있나요.
"장혜영 의원도 와글 사무국장 출신이고,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도 저희가 진행한 디지털 연수 과정에서 선발되어 국회 인턴십을 시킨 케이스지요. 권지웅 민주당 비대위원도 와글의 대표이사고요. 그 밖에도 와글을 거쳐서 민주당, 정의당, 미래당, 녹색당에서 지방의원을 하거나 당직을 맡고 있는 분들이 꽤 있죠."
- 그런데 청년 정치인들에게 의구심을 품는 시선은 여전합니다.
"먼저 앞으로 그들은 살 날이 훨씬 더 많은 지구의 세입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곧 다가올 혹은 천천히 다가올 새로운 문제들에 대해서 나이 든 사람들보다 훨씬 예민하고 진지해요. 오히려 저 같은 연배의 사람들은 (새로운 문제들에 대해선) 그 친구들에게 계속 묻고 들어야 해요.
국회의원이 '입법 노동자'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공공이 함께 소중하게 여겨야 할 우선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가치를 구현해내기 위한 최상의 방법을 찾아가는 사상적 퍼실리테이터(촉진자) 같은 역할을 정치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미래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시대적 가치'를 더 많이 고민하는 청년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서는 게 우리 사회의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 청년 정치인이 드물기도 할 뿐더러, 그들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드는 데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키우지 않고 지속 가능한 조직이 있나요? 기업도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니까 계속 사람을 키워내고 리더십을 교체해요. 그런데 정당은 인적 자원을 키우는 일을 거의 안 해요. 잠재력이 있는 젊은 정당인, 정치인이 있으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는데 자꾸 '들러리', '구색 맞추기'로 소비해 버려요. 개인이 성장하기보다는 단물만 빨리고 버려지는 구조인 거죠.
'정당 개혁'이 안 되는 상황에서 청년 정치인들도 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수평적 연대', 그러니까 정당이 다른 정치인들끼리 다이나믹한 연대를 가질 필요가 있어요. 함께 싸울 때는 싸우고, 이견이 있는 정치적 쟁점에서는 품격 있게 논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리의 정치는 다르다'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586, 주도자 아닌 조력자로 물러설 수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