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앱의 '진료 요청서' 화면
채희주
비대면 앱 진료에 실패한 후 107에 전화를 걸었다. '국번 없이 107번'을 누르면 손말이음센터로 연결된다. 손말이음센터는 전화 이용이 어려운 청각 또는 언어장애인이 전화를 통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끔 통신중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센터에 현재 상황을 전했다. 그러자 센터는 "집에 다른 사람은 없냐"고 물었다. 집에 어머니가 계시긴 했지만, 어머니 역시 화요일까지 자가 격리를 해야 했다. 수어를 모르고 연세가 지긋하신 어머니께 병원과의 통화 등을 대신 부탁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가 격리 중인 농아인 확진자를 위한 진료 방법이 따로 없냐고 물었지만, 센터에서는 다른 방법을 제시해 주지 않았다.
결국 자가 격리 첫째 날, 국가가 코로나 확진 자가 격리 대상자에게 제공하는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났다.
하루, 이틀, 사흘째에야 겨우... 그마저도
다음 날인 3월 22일 화요일, 증상은 더 심해졌다. 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오한과 기침이 계속됐다. 전날 의사와의 화상 통화에 실패하고, 센터를 통한 문의를 통해서도 뭔가 해결책을 얻지 못했지만, 어느 곳도 다시 연락을 주지 않았다. 자가 격리 둘째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견뎌야 하는 하루였다.
자가 격리 3일째인 3월 23일 수요일, 드디어 격리 해제로 외출이 가능해진 어머니를 통해 약을 받을 수 있었다. 확진 판정을 받은 지 꼬박 이틀만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의사의 처방을 통해 받은 약이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가 약국에 전달한 증상만으로 얻어온 약이었다. 코로나19 확진 진료와 이에 따른 처방이 없었기에 약 값은 유료였다.
다른 농아인 확진자 친구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시동생의 도움을 받아, 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약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불편은 처음이 아니다. 평소 다른 질환으로 병원 진료를 받을 때도 의사와의 소통은 늘 고비였다. 간혹 친절한 의사를 만나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필담으로 진료가 가능했지만, 필담으로조차 소통하려 하지 않는 의사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정확한 진찰 후 약을 처방해 줄 의사를 찾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수어 통역사와 동행하면 되지 않겠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지역 수어통역센터에 부탁하면 통역사를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수어 통역사가 현저히 적은 한국에서 일반 농아인과 수어 통역사가 동행하는 건 힘든 일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혼자 사는 농아인들이 염려된다. 내겐 어머니가 계셔 어렵게라도 약을 구할 수 있었지만, 혼자 사는 농아인이 확진된다면 자가 격리를 어찌할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영미씨의 바람 "화내지 말고 부드럽게 대해주세요"
영미씨와의 인터뷰는 수화로 이뤄졌다. 2시간여의 시간 동안 사흘에 걸쳐 느낀 답답함을 전하느라 그의 손놀림에 멈춤이 없었다. 인터뷰 말미,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영미씨는 청인들에게 아주 쉬운 부탁을 전했다.
"배려를 부탁합니다. 농아인들은 듣지 못하니 글로 써주고, 화내지 말고 부드럽게 대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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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진료 못 받는 우린, 코로나 걸리면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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