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의 모습.
공공운수노조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일 차에 인천공항을 방문했다. 비정규직이 압도 다수인 인천공항을 방문해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기대했다. 어쩌면 우리도 기업은행의 정규직으로, 아니 정규직처럼 많은 월급은 못 받아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노사전협의체를 진행하면서, 기업은행은 정부가 제시한 정규직 전환 방법 중 하나인 자회사 방식을 우리에게 그대로 제시했다. 우리는 기업은행의 자회사로, IBK서비스의 직원으로서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그러나 청소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에 적힌 근로시간은 용역업체 때와 동일했다.
기업은행 지점은 거의 하루 3시간 근무, 주 15시간, 휴게시간이 없다. 기업은행 본점 같은 기업은행 건물들은 하루 7시간 근무, 주 35시간, 휴게시간 1시간. 같은 자회사 정규직이면서 왜 이리 각기 다른지. 기업은행의 변명은 "지점은 하루 3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다", 기업은행 본점 등은 "하루 7시간만 청소해도 된다"라고 한다. 그저 용역계약금액만 후려칠 생각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는 청소노동자들을 정규직이라 불렀다. 정규직 전환 이후 달라진 건, IBK마크가 찍힌 청소복 한 벌과 근로계약서 사용자란의 글자가 'IBK서비스'로 달라진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삼규직'이라고 불렀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3시간만 일하는 삼규직.
정부가 정규직 전환 성과라 자화자찬하는 기업은행의 청소직원 '삼규직' 전환을, 세상은 정규직 전환이라 불렀다. 회사는 용역업체 때부터 하던 근로조건을 그대로 유지했으니, 특별히 월급이 깎인 것도 아니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용역업체 시절, 업체가 바뀔 때마다 해고에 떨며 하루 3시간씩 일하던 것에서, 이제는 퇴직할 때까지 계속 하루 3시간, 월 60만 원 받고 일하게 되었으니 더 나아졌다고 해야 한다는 건가. 따지고 보면 좋아야 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분이 묘했던 건, 그동안 청소노동자들을 여사님 혹은 미화원님이라 부르면서도 느껴졌던 그 약간의 미안함, 고령의 여성, 청소 직종 비정규직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마음 써줬던 그 눈빛과 태도들이, 이제는 양심의 가책을 다 털어낸 것 같은 당연함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은행 선생님들이 특별히 어떤 잘못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세상이 우리를 정규직이라 부르기로 하니, 속사정 아랑곳없이 우리는 '정규직'이 되어야만 했던 것 같다.
같은 회사인 듯, 같은 회사 아닌, 같은 회사
자회사로 전환되기 전에는 그래도 기업은행은 청소노동자에게 직접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 다른 회사의 직원이니까. 우리에게 직접 지시를 했다가는 당장 노동조합에서 불법파견이라고 고발을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자회사로 전환되고 난 후, 모회사와 자회사, 기업은행과 IBK서비스의 관계는 참 애매해졌다.
같은 회사 같은데 같은 회사는 아닌 이상한 관계. 원청 소속은 아니지만 기업은행 직원이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이상한 관계. 기업은행은 IBK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IBK 가족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사자로선 이게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인지 가족에게 할 짓인지 분노만 더 일어난다.
기업은행은 IBK서비스, 자회사 노동자들에게 별도의 독립법인이니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노라 공언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친 경험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청와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