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해 2007년 6월 9일 오후 성공회대성당 마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함세웅이 8년여 만에 돌아왔을 때 한국은 흡사 유럽 중세기 신정국가와 같았다.
1969년 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의 길을 튼 박정희는 1972년 10월 친위쿠데타로 영구집권에 나서 1인 독재의 유신지배체제를 구축했다.
김포에서 여의도로 들어오는데 곳곳에 헌병들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며칠 뒤 6.25 기념일에 학생들이 서울역에서 동대문운동장까지 반공 궐기 행진을 하는 모습은 당시 유럽과는 딴 세상이었다. 귀국한 지 한 달쯤 지나서 연희동성당 보좌신부로 발령받는다.
나는 사제가 되었습니다. 단조로움 속에서 키워 왔던 꿈을 펼쳐야 합니다. 나는 첫 번째로 연희동 보좌신부로 임명되어 왔습니다. 이곳도 많이 변한 동네 중의 하나였습니다.
"신부님, 저쪽은 제2의 도둑촌입니다"
누가 일러 줍니다.
"말은 많이 하지 말고 주로 듣기만 하세요!"
또 다른 이가 귀띔해 줍니다.
"웃어른이나 전임자를 비방하는 분을 특히 조심하십시오!"
또 다른 가르침입니다. 나는 이론과 경험, 상아탑과 사회란 의미를 되씹으며 이 모든 말들을 새김질하고 있습니다. (주석 1)
그가 사제가 되고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발표한 <공범자>라는 글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의 올곧은 비판 정신, 불의와 부정에 참지 못하는 정의감의 싹수가 이때부터 나타난다. 어느 날 모니카회에서 산정호수로 가을 소풍을 갔다. 당시 관광버스의 풍경대로 노래자랑, 특기 연습 등 흥겨운 시간이 진행될 즈음 경찰관의 손짓에 버스가 멈춰섰고 운전기사가 내리더니 경찰관 손에 500원을 쥐여주고 올라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가다가 보니 검문소가 눈에 띕니다. 헌병이 버스를 멈추게 하더니 옆에 있던 경찰관 한 명이 늠름한 자세로 지켜 섭니다. 운전사는 차를 세우고 뒤를 향해 한마디 합니다.
"누구 한 분 나가 보세요!"
뒤에 앉아 있던 내가 일어서서 나가려니 옆자리의 교우 한 분이 나를 잡고, 또 다른 이가 알려 줍니다.
"이럴 때는 신부님이 나가시면 안 돼요!"
이 사이에 벌써 한 분이 내려갔고, 종이 한 장이 그 손에 쥐어진 다음 올라왔습니다. (주석 2)
이는 당시 한국의 현실이다. 가는 곳마다, 관청마다 뇌물과 촌지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헌병대에서 군 복무를 할 때 봤던 군대의 비리가 사회에서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던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우리는 각자 짐을 들고, 상품 등 많은 짐은 어느 지게꾼 아저씨가 짊어졌습니다. 약 이삼십 분 올라가는데 단풍든 모습이 하나도 아름다워 보이질 않았습니다.
지게꾼 아저씨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이렇게 한 짐을 나르는데 300원의 삯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 삯을 치르려고 하자 회계를 맡은 분이 안 된다고 하며 재빠르게 300원을 줬습니다. 이왕이면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버는 이분에게 500원을 다 주라고 말했습니다. 200원을 더 받은 이 지게꾼 아저씨는 진심으로 고마워했습니다. (주석 3)
나라에서 월급을 받은 검문소의 경찰관과 헌병이 차를 세우자 시민들은 알아서 그들에게 돈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지게꾼에게는 더없이 박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그는 자신이 '공범자'라고 자처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땀 흘려 버는 이 아저씨와 검문소의 경찰관, 거기에는 분명 격분을 자아내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구조에 대한 아무런 부질없는 격분, 그러나 이 격분을 꾸짖은 소리가 또 있습니다.
"신부님, 사회란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정말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나요? 강론대에 올라서면서 '사회'란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신자들에게 정말로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 나는 생각해 봅니다. (주석 4)
주석
1> <공범자>, <사목>, 1974년 1월. <함세웅 신부 삶>, 253쪽, 제3기획, 1984. (이후 <삶> 표기)
2> 앞과 같음.
3> 앞과 같음.
4> 앞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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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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