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 오전 서울의 한 학교에 설치된 이동형 PCR 검사소에서 학생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드디어 기나긴 어둠의 터널 끝이 아스라이 보이는 것 같다. 아직 섣부르다는 전문가도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엔데믹'이 화제다. 지난 2년 반 동안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코로나 역병이 풍토병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교실 문만 빼꼼히 열었을 뿐 체육관과 운동장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없었던 학교도 이제 정상화 채비 중이다. 확진자가 수십만 명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전국 대부분의 학교는 등교 수업을 했다. 하지만 방역지침에 따른 온갖 제약이 많아 제대로 된 수업을 할 수 없었다.
말이 좋아 등교 수업이지, 모둠활동을 할 수도 없고 교실 간 이동 수업도 제한되었다. 숨쉬기조차 힘든 KF94 마스크를 종일 착용한 채 수업을 진행하는 건 교사로서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아이들 역시 교사의 입 모양을 볼 수 없어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학교에선 급식소에서 식사할 때를 제외하곤 단 한 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몇몇 되바라진 아이들은 교사의 눈을 피해 마스크를 벗어 던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마치 안경처럼 몸에 일부로 여긴다. 이젠 마스크를 안 쓰면 불안하다는 아이도 있다.
워낙 오랜 시간 마스크 차림에 길들어진 탓에 정작 아이들의 얼굴을 구별하기가 힘들어졌다. 이젠 마스크를 벗으면 되레 누군지 헷갈릴 지경이다. 마스크를 벗은 채 촬영한 사진첩 속 아이들의 얼굴이 낯설어 코와 입 부분을 손으로 가려야 알아볼 수 있다는 교사도 적지 않다.
조만간 건물 밖에서는 마스크를 벗게 될 거라는 희망 섞인 뉴스가 들린다. 그렇다면 아이들도 교실에서 수업할 때만 마스크를 써도 된다는 뜻이다. 사실 지금껏 운동장 사용을 제한한 건 마스크 때문이었다. 마스크를 낀 채 뛰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실효적이지도 않다.
사실 쥐 죽은 듯 조용한 학교는 진짜 죽은 학교다. 아침 일찍 등교해 종일 눈만 멀뚱멀뚱 뜬 채 하루를 보낸 뒤 귀가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흡사 좀비 같기도 하다. 매일 누가 감염됐는지 파악해 보고하는 것이 교사의 주요 업무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게 무리는 아니다.
전가의 보도처럼 방역지침을 들이밀며 학교 내 어디서든 말하는 걸 삼가라고 강조해왔다. 특히 급식소에선 옆 친구와 그 어떤 대화도 허용되지 않았다. 아무튼 오랜 시간 폐허처럼 방치됐던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달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진 아이들
그런데 머지않아 운동장이 열리게 될 거라는 소식에 정작 아이들의 표정은 뜨뜻미지근하다. 답답한 마스크를 벗게 돼 좋긴 하지만, 뜬금없이 닫혔던 매점이나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대꾸했다. 한 아이는 매점이 운동장은커녕 급식소보다도 더 간절하다며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그들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차분히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관찰해보면, 한두 해 전에 견줘 하늘과 땅 차이만큼의 큰 변화가 느껴진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수업과 가정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게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우선, 달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진 아이들의 혀끝은 더욱 굳어진 듯하다. 매점 문이 닫혔으니 허기 때문에라도 급식을 거르진 못할 텐데, 여전히 점심시간 급식소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일주일에 하루인 이른바 '채식의 날'에는 급식소 곳곳에 빈자리가 보인다.
그렇다고 당일 도시락이나 간식을 챙겨오는 것도 아니다. 채식을 먹느니 그냥 굶겠다는 거다. 대신 허기를 달래기 위해 그들이 찾는 곳이 있다. 바로 건물 입구에 설치된 음료 자판기다. 주스나 이온 음료로 배부를 리 없건만 매시간 찾아와 들이키고 가는 아이가 적지 않다.
지난 2년 반 동안 집밥 대신 되레 인스턴트 음식에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인다. 자판기 앞을 서성이는 아이들에게 부러 물어보면, 비대면 원격 수업 때 배달 음식을 주문하거나 라면 등으로 점심을 때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맞벌이 가정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놀랍게도 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는 저녁 식사 때조차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주방에서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도 했다. 그래선지 요즘 아이들이 더욱 달달하고 자극적인 맛을 탐닉하게 된 것 같다.
아침에 교실로 배달되는 우유는 급식 신청자를 지목해 즉시 마시게 하지 않으면 종례할 때까지 그대로 상자에 담겨있기 일쑤다. 점심시간 전 간식 삼아 매월 초 급식 신청은 하는데 꼬박꼬박 챙겨 먹는 아이는 많지 않다. 이유인즉슨, 흰 우유라서다.
우유가 흰색인 건 어쩌면 당연한데, 아이들은 맛이 없다며 다른 우유로 바꿔 달라고 한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초코우유와 딸기우유다. 당분이 너무 많아 우유 급식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했더니, 나름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흰 우유에 초코맛 가루를 섞어서 마시는 것이다.
급기야 주중 두어 번은 흰 우유를 떠먹는 요거트로 바꿨다. 그나마 밋밋하고 시큼한 맛은 싫다고 하니 딸기 맛이나 포도 맛 요거트로 대체했다. 요즘 아이들은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해도 맛이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맛있다는 건 달고 자극적이라는 의미다.
아이들이 오매불망 매점이 열리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건 그래서다. 적어도 맛으로만 치면, 학교 급식이 매점에서 파는 주전부리를 닮아가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나물 반찬은 거의 사라졌고, 생선도 무조건 튀겨서 단 소스를 입혀야 그나마 젓가락을 가져간다.
신체에서 활성화된 곳은 손가락뿐이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