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휴가사용촉진 제도가 일부 사용자의 '꼼수'로 악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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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이는 더 명확해진다. 적어도 휴가자가 속한 부서 관리자라면 그가 휴가일임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것인데, 분명히 휴가를 써 놓고는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을 보며 "저 직원 정말 훌륭한 태도를 지녔다"고 생각만 한다면 묵시적으로 노무제공을 승인한 것과 마찬가지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대법원은 사용계획서상 휴가일로 지정된 날에 출장을 간 사건에서, 회사가 당해 직원으로부터 출장 관련 기안서를 제출받는 등 해당 일자에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게 됨을 사전에 인지하였음에도 이에 대한 노무 수령 거부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으므로 사용촉진제도가 적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0.2.27. 선고, 2019다279283 판결).
여기에 만일 아무 생각 없이 추가적인 업무 지시를 하달한다면? 이 경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사용자로부터의 지휘·명령이 행사된 것으로 봄이 명백하므로, 그날을 당해 직원이 노동으로부터 면제되는 휴가일이라고 볼 수 없음도 명백해진다. 이 상태에서 연말에 미사용 수당을 따로 지급하지 않는다면, 이는 100% 임금체불이다.
[이슈2] 사용계획서로 제출한 날에 연차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보다 실무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자. 다수의 사업장에서는 사내 그룹웨어 등 전자적 시스템으로 결재체계를 구축하면서 연차유급휴가 또한 이를 통해 신청하고 상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용계획서는 법적으로 '서면'으로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진짜 종이 문서 내지는 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진 전자문서를 통해 별도로 제출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A라는 직원은 사용계획서에는 3일 남은 연차휴가를 각각 9.1, 10.1, 11.1에 사용하겠다고 작성해놓고는 정작 그룹웨어에는 이날 연차를 상신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내 시스템상으로는 애초에 휴가일이 아니다 보니, 어지간히 꼼꼼한 관리자가 아닌 이상 몇 달 전 제출한 사용계획서를 들여다보면서까지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잔여 연차유급휴가의 "전부 또는 일부의 사용 시기를 정하여 사용자에게 통보"하지 않은 경우 2차 촉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문만 놓고 보면 애초에 사용계획서를 안 낸 직원에 대해서만 2차 촉진을 하면 된다고 해석되나,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쓰겠다고 해 놓고 정작 안 쓴 경우"를 제대로 된 통보로 볼 수 있겠냐는 문제가 대두된다.
사용촉진제도의 취지가 휴식권 보장을 위한 반강제적 휴가 소진에 있음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이렇게 '안 쓴 휴가'는 애초에 계획을 통보하지 않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2차 촉진의 대상으로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여 실질을 따져 보았을 때 기존의 사용계획서 제출이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면, 적법한 사용촉진제도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게 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휴식권 온전히 보장하는 사용촉진제도로 활용해야
따라서 회사는 단순히 형식에 지나지 않는 사용촉진절차만을 행해 두고,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이 그날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명시적·암묵적으로 이를 수령하는 행위를 더 이상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요즘, 관련 시스템의 발달로 굳이 출근하지 않더라도 업무 지시를 할 방법은 많으며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게 될 법관이나 감독관들도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굳이 대면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방법으로도 휴가일에 업무를 지시하거나, 도저히 기한 내에 처리할 수 없는 업무를 부여하고는 그 기간에 연차를 사용하도록 반강제하는 '반칙'은 지양해야 한다.
법적 휴식권을 온전히 누려야 할 노동자 또한 법의 취지를 고려하여 업무에 지장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가급적 휴가를 모두 사용하도록 하며, 업무 스케줄로 인하여 기존에 계획하였던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명시적으로 그 변경 일자를 밝혀 회사의 인사관리에 혼선을 주는 일을 피해야 한다.
나아가 기업문화의 차원에서도 정당한 연차유급휴가 사용에 대하여 눈치를 주는 일이 없도록 인식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충분한 휴식이 뒷받침되어야만 업무능률이 오르고 개인의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휴가자가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서로가 업무를 적극적으로 품앗이하는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나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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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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