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 질문에 답변하는 임승관 병원장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지난 1월 2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 특성 대응 방안 등 전문가 초청 특집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 사회는 팬데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코로나 감염병 초기, 방역당국은 환자에게 번호를 붙였다. 정부 책임자들 입에선 최근까지도 '2주 만 더' '이번만 참아내면' 등 곧 감염병 사태가 종식된다는 발언이 꾸준히 나왔다. 2년 동안 네 차례
큰 파도(유행)가 불었고, 지금이 다섯 번째 파도다. 지금은 하루 신규 확진자만 수십만명씩 발생한다. 그런데 한국은 계속 '종식담론' 안에서 팬데믹을 사고해 왔다. 사회적 의제를 형성하는 정부, 전문가, 언론 모두 마찬가지다.
2015년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 때 강력한 진단 검사, 격리·병원 폐쇄 등 정부 주도의 통제로 몇 개월 간 전력해서 막아낸 기억이 매우 강렬하게 남았다. 그런데 메르스는 치사율 34%(신종 코로나 감염병 치사율 세계 기준 1.25%)를 기록한, 총 186명이 확진된 감염병이었다. 이 경험에 기해 '코로나19도 우리가 노력하면 통제할 수 있다'는 관념이 강력하게 남았다. 통제가 안 되면 '노력이 부족했다' '어디에 빈틈이 있지?' '누가 거리두기를 안했지?'라 물으며 오류를 찾는 방식으로 사고했다."
- '종식 담론'이 팬데믹 시기에 맞는 않는 관점이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팬데믹'은 '에피데믹'과 다르다. 에피데믹은 국지적 유행, 팬데믹은 용어 자체에 모두(pan)가 포함된 '거스를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됐다. 페스트, 천연두, 콜레라, 인류 역사상 모두가 다 걸리는 게 팬데믹이었다. 인구의 70~80%는 걸려야 끝나는, 쉽게 말해 '집단 면역'이 형성돼야 끝나는 거다. 미생물은 원래 인류보다 더 빠르고 강하고 영리하다. 축구로 치면 브라질 같은 강팀에 대응하는 건데, '전략' 없이 마치 동네 축구하듯이 '우리가 잘하면 이긴다' 식으로 대응했다.
이번 5차 파도 그래프가 이렇게 나오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탄성력 있는 물체를 힘으로 누르다 떼면 반등하는 거고, 팽창력 있는 물질이라면 더 반등이 크다. 유행은 종식할 수 없고 단지 그 시기를 미룰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유행을 없애는 게 아니라 뒤로 미뤄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이마저 공짜가 아니라 문화, 경제, 교육 등 다른 영역의 피해를 감수하는, 미래에 빚을 남기는 수단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에 피해를 전가하는 시기 동안 전력을 다해 다음 파도에 대비해야 했다. 여기서 또 팬데믹을 제대로 이해 못한 문제가 드러난다. '불확실성'이란 팬데믹의 속성이다."
- 한국 사회가 팬데믹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간과했다는 뜻인가?
"백신을 예로 들면, 한국은 백신·치료제란 '영웅'을 기다리는 서사만 맹신했다. 백신이 개발되고 다차 접종까지 마치면, 이 백신으로 인한 면역이 감염에 따른 집단 면역을 대체해 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그 결과가 일상회복 지침을 발표했던 게 지난해 11월이었다.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는데,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정반대였다. 찬란한 성공처럼 여겨진 K-방역이 크게 실패하는 일이 일어났다.
어떤 변이가 어떻게 나타날지, 기존 백신이 변이에 효과적일지 아닐지 다 불확실했다. 이 속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대비했어야 했는데, 정부도, 전문가도, 언론도 다양한 시나리오를 탐색하고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 없이 시간을 방기하다 갑자기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을 맞았다."
"K-방역 자화자찬할 뿐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지 못해"
- 그래도 결과적으로 백신 관련 정책은 성공적이지 않았나? 그럼에도 한국 방역이 전환에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미크론 유행이 시작되니 사람들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떻게 요양시설을 구하느냐' 하고. 이걸 시험에 빗댄다면 수능 일주일 남기고 '어떻게 수능 잘 보느냐'라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는 누군가의 피해로 번 그 소중한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 지역별, 국가별로 감염병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 봉쇄정책이 가능했던 한국은 시간을 번 반면, 유럽, 북미 대부분의 나라는 시간을 벌지 못하고 의료 붕괴를 겪었다. 우리가 최근 유행기 동안 겪은 의료 붕괴, 요양시설 집단 감염, 교육 붕괴 등의 문제를 유럽 등은 2020년에 겪었다.
우리가 해야 했던 건 이들의 피해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지 탐구하고,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거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1~2년 동안 K-방역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수출 대상으로 자화자찬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보나?
"코로나 초기 스웨덴 방역당국이 섣불리 '집단 면역'을 택했다가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스웨덴 시민사회는 동요하지 않았다. 당시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은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만을 택하겠다'는 답을 했었다. 스웨덴이 하지 않은 건 크게 국경봉쇄와 락다운이다. 국경 봉쇄는 과학적으로 의미 없다고 봤고, 락다운은 시민들이 수용하지 않을 거란 판단이었다. 자기 사회가 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고, 이 과정을 사회적으로 토론하고 소통하면서 결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지난 2년 3개월 간의 한국의 코로나 의료 대응 체계는 평상시 우리가 하고 있는 방식인가? 확진자가 나오면 보건소에서 명단 확보하고, 인적·건강 정보를 수집해 고위험군은 전담병원으로, 위중증 의심자는 생활치료센터로 일일이 매칭시킨다. 보건소, 전담병원, 중앙사고수습본부 상황실 병상배정반의 공무원 인력이 일일이 소통해 배정한다. 평소 의료 체계는 이렇지 않다. 95%가 민간 병원이고, 환자가 자율적으로 병원을 선택해 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상황이 이러하다면 처음부터 민간 병원들과 다같이 진료하는 분담 체계를 꾸릴 수 있게 그 전달 체계를 만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