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자찬 3회 전시때 포스터로 사용한 사진. 내가 가진 펜과 붓 그리고 잉크병으로 글자를 만들었다.
오창환
예전에 누드 크로키를 하는 화실에 다녔는데, 그때 가까운 사람들 몇 명이 모여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같이 전시도 세 번이나 했다. 그 동아리 이름이 자화자찬이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의 심정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을까.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초상화를 그리면 보통 그 인물에 대한 덕담을 그림 속에 써넣었다, 그것을 찬(讚)이라고 한다. 여기서 찬이란 칭찬이란 뜻이 아니고 글의 형식을 말한다. 자화상을 그렸을 경우 찬을 스스로 써야 하는데 그것을 자화찬 혹은 자화자찬(自畫自讚)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화자찬이 낯 뜨거운 자기 칭찬이었던 것은 아니다. 보통 문인화를 그리는 선비들이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들이 찬을 지으며 말도 안 되는 자기 자랑을 하겠는가. 오히려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자화찬이 많았다. 그런데 후대에 의미가 변질되어 터무니없는 자기 자랑을 자화자찬이라고 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겸손한 평가이든, 터무니없는 자랑이든 간에, 우리는 자화자찬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 이름을 듣고 즐거워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 자화자찬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그림
여기서 오랜만에 어반스케쳐스 선언문으로 돌아가자. 선언문 6조는 다음과 같다.
6.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함께 그린다.
어반스케쳐들 사이에서는 지지하고 격려하기만 할뿐, 비판하지 않는다. 어반스케쳐 설립자인 가브리엘도 어반스케치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어반스케치는 시간상 공간상 제약이 있기 때문에 결과물로만 따지면 다른 그림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 우리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그런 결과를 감수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반스케치만는 그 나름의 고유의 미학이 있어서 제약이 없는 그림보다 더 좋은 그림이 될수도 있는데, 이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이제 어반스케치 선언문 전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어반스케쳐스 선언문
1. 우리는 실내 혹은 실외에서, 직접적 관찰을 통해 본 것을 현장에서 그린다
2.우리의 드로잉은 우리의 주변, 즉 우리가 사는 장소와 우리가 여행하는 곳에 대한 이야기다
3. 우리의 드로잉은 시간과 장소의 기록이다
4. 우리가 본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5. 우리는 어떤 재료라도 사용하며 각자의 스타일을 소중히 여긴다
6.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함께 그린다
7. 우리는 온라인에서 우리의 그림을 공유한다
8. 우리는 한 번에 그린 한장의 그림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어반스케치란 현장에서 그린다는 점 말고는 별다른 제약이 없고 각자 개성대로 그리면 된다,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교류하는 것이 큰 특징이기는 하다. 이는 현대적인 상황에 잘 맞으며, 아마 온라인 공유가 없었으면 어반스케쳐스 조직이 이렇게 갑자기 커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반스케쳐스 본부는 예전에는 선언문 1조를 많이 홍보했는데, 요즘에는 8조를 많이 인용한다. 우리는 한 번에 그린 한장의 그림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만약 한장의 그림으로 미쳐 다 보여주지 못하면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