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리케이션으로 아이가 먹는 학교 급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준수
문득 혼자 냉동실에 있던 약밥을 데워먹다가 학교 급식 생각이 났다. 나는 지난 십이 년간 학급 담임을 하면서 같은 테이블에서 학생과 함께 밥을 먹었다. 다들 맛있게 숟가락을 뜨는데, 유독 몇 명은 더 폭발적으로 음식을 흡입했다. 한창 클 시기이니, 새우튀김을 더 달라고 하는 아이는 많다. 그러나 매번 밥과 국, 반찬을 리필해 가며 두 번씩 먹는 아이는 흔치 않다.
위장이 수용할 수 있는 음식량의 한계를 시험하듯 먹는 아이가 걱정되어 따로 물어본 적이 있다. 요즘 배가 많이 고프냐고.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녁에 먹을 게 없거든요. 아빠도 늦게 들어오고."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아이는 아버지와 둘이 사는데, 아버지가 3교대 근무라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아빠 근무가 없거나, 일찍 들어오는 날에는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서 괜찮았다. 오후에 근무가 있으면 아버지는 만 원을 아이에게 쥐어주었다.
뭐라도 든든하게 먹으라는 마음이었겠지만, 4학년 아이 혼자 저녁에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른도 혼밥이 힘든데 아이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순댓국을 주문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결국 아이는 편의점에서 과자와 탄산음료, 소시지 등을 하굣길에 구입해 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식사가 될 리 없으므로, 아이는 학교 급식을 배 터지도록 먹은 것이다.
밥 한 끼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
아이에게 급식은 타인과 교감하며 먹는 몇 없는 밥상이었다. 그리고 양질의 재료로 만든, 5대 영양소가 골고루 갖춰진 청결한 음식이었다. 나는 당시 아이에게 만 원으로 시켜먹어도 좋으니 백반이나 냉면이 나오는 식당 밥을 먹으라 권했다. 그러나 휴직자인 나의 부실한 점심을 보자 쉽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게으름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혼자 있는 사람은 여럿이 함께 밥을 먹는 사람과 달리 음식에 큰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컴퓨터 모니터나 TV를 보면서 먹는 등 식습관이 나빠지고, 주변 사람과 교류도 줄어든다. 인스턴트 비중이 늘게 되어 건강을 해친다.
나는 휴직 중 혼자 점심을 해결하면서 함께 먹는 밥, 정성을 다한 상차림을 먹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학교에 갔다 온 아이가 급식에서 맛있게 먹은 메뉴를 자랑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자녀가 있다면 점심시간에 누구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다른 음식은 어땠는지 다정하게 물어봐 주자. 학교 소식 애플리케이션으로 급식 사진을 들여다보며 물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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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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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을 리필해먹는 아이, 내가 몰랐던 그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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