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중심가 가로망조선총독부가 있는 것으로 보아 1926년 이후 사진이다.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태평로, 소공로, 을지로 등의 가로망 윤곽이 뚜렸하다. 이들 가로는 모두 '내부령 9호'에 의해 조선이 개설한 도로다. 현 한국은행 건물과 총독부 철도호텔(현 조선호텔) 모습도 같이 보인다.
서울역사박물관
함세웅(咸世雄)은 1942년 6월 28일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3가에서 태어났다. 목재상인 아버지는 유교적 가치를 중시하고 어머니는 평범한 분이셨다. 형이 둘 있었으나 6.25 한국전쟁 때 사망하고 외아들로 성장한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코헬렛 3,1-2)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시기는 일제 말기에서 해방ㆍ분단ㆍ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혹독한 시련기였다. 현재 생존한 세대 중에서 그는 나라가 가장 어려울 때 태어나고 성장한 세대에 속한다.
일제의 단말마적인 착취와 탄압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시키려 들었다. 주요 사건을 추적해 본다.
조선총독부는 1942년 2월 식량관리법을 공포하여 민간인의 식량까지 통제하고, 3월 각 가정의 수저와 놋그릇 등 금속류를 강제 회수하고, 5월 징병제 실시, 9월 청장년 국민등록제 실시, 10월 한국어 교육과 사용 금지, 이른바 전시체제를 강화하면서 국민을 옴짝달짝 못하도록 더욱 옥죄었다. 5월에 악독하기로 소문난 고이소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2세 때인 1943년 10월 학병제 실시, 11월 학도병에 지원하지 않는 학생에게 징집영장 발급, 8월 여자정신대 근무령 공포, 만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 없는 여성들을 일본과 남양군도 등 각지로 끌어갔다. 고이소가 일본수상으로 전임하고 아베 신조가 새 총독으로 부임했다.
3세 때인 1944년 1월 총독부가 여학생들을 일제 군수공장에 동원하여 군복수선과 세탁 등 노역을 시키고, 남학생들에게 소나무 진액과 목화 뿌리 채취를 지시했다. 1945년 3월 총독부가 '결전 교육조칙'을 공포, 초등학교 외의 모든 학교 수업을 정지시키고 학생들을 강제노동 또는 군대에 동원하였다.
함세웅은 4세 때에 해방을 맞았다. 아직 유아기라 일제 말년의 참혹한 압제를 기억하기는 어린 나이였다. 집안 어른들의 과보호로 감기에 잘 걸려서, 오히려 건장한 몸으로 성장하기에 어려웠다.
"제가 어려서부터 몸이 좀 약해서 감기에 자주 걸렸어요. 감기에 걸리면 학교 앞에 있는 성모병원에 다녔는데, 약을 많이 써서인지 감기에 약했어요." (주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