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선생과 함세웅 신부
함세웅
이런 도정에서 '정의'라는 불쏘시개를 들고 광야를 쉼 없이 순례하는 성직자가 함세웅 신부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현실에 타협하거나 연치의 한계에서 활동을 멈추어도 그는 온화함과 명징한 시대정신으로 초지일관 예수의 길, 역사의 길, 정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세속에 사는 사제이지만 속되지 않았고, 80세의 연치에 이르지만 노쇄하지 않고, 책임 맡은 과제가 많음에도 일처리에 삿됨이 없는 모습은 한 시대의 가치기준으로 삼는 데 모자라지 않을 터이다.
그의 생애는 큰 줄기만을 헤아려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 두 차례 투옥, 가톨릭대학교 신학과 교수, 평화신문ㆍ평화방송사 대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10.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명예회복위원회 공동대표,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 원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이다. 아무나 하기 어려운 자리이고 맡기지도 않는 위치이다.
그는 흔히 여느 명사들처럼 간판용이 아닌 열과 성으로 맡은 소임을 다한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성실성을 보인다.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명사들 중에 더러는 지치고, 상당수는 관복을 입고, 혹자는 변신하여 반동적 수구파가 되고, 일부는 진보를 팔아 얼치기 진보 행세로 진영을 망치는 자들도 생겼다.
야만성이 짙었던 한국의 격변기(격동기)에 지명도 높은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품격 있게 살아가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은 사회였다. 확증편향이 심하고 극단과 불신의 골이 깊어진 시대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신념과 명징함을 잃지 않고 정의의 가치를 확산시키고자 노력해왔다. '정의'를 시대적 가치로 정신무장을 단단히 한 까닭이리라.
화가들은 용이나 기린 등 상상의 동물보다 소ㆍ닭ㆍ돼지를 그리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전자는 보는 사람이 없어서 잘 모르기 때문인데, 후자는 너무 세세하게 잘 알아서 그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대 인물 평전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것은 시대는 바야흐로 '공정과 상식'이란 관제 구호가 나부낀다. 과거 전두환의 국정지표라는 '정의사회구현'이나 이명박의 '공정사회' 구호 등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가 '불의의 뒤엎음' 이었음을 보여주었다. 하여 진정한 의미의 '정의'가 요구되고, 여기에 함세웅 신부의 정의를 향한 강고한 삶의 궤적을 살피면서 '관제정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하고자 한다.
아울러 같은 시대를 살면서 지켜보아온 대로, 그는 기나긴 수행의 과정을 거쳐 험난한 현대사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식을 줄 모르는 관심과 지속적인 학구열, 그래서 "정의를 향한 겸손한 구도자"를 나의 '평전 시리즈'에서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뜻 있는 분들의 많은 편달을 기대하면서 '숨 쉬는 현대사'를 찾아가는 길손이고자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6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