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웅덩이를 촬영하고 있는 임형묵 감독
임형묵
화산섬인 제주에는 파도에 잠겼다가 드러난 갯바위 사이에 웅덩이가 참 많다. 대개는 이 바닷물 웅덩이를 지나 저 멀리 수평선과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는데, 카메라를 들고 가만히 엎드려 웅덩이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 뷰파인더를 통해 그가 바라본 모습은 무엇일까.
제주 조간대(밀물에 잠겼다가 썰물에 드러나는 지역)의 다양한 생태를 담은 영화 <조수웅덩이: 바다의 시작>(2019)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을 연출·제작한 임형묵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을 지난 2월 중순, 제주 평대리 중동마을 작업실에서 만났다.
- 안녕하세요, 제주 조수웅덩이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제주에 내려와 자연다큐 제작에 전념한 지 어느새 14년이 됐네요. 이전에는 서울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영상 프로덕션, 방송국, 광고 분야에서 촬영감독으로 일했어요. 한동안 프리랜서 촬영감독으로 일했는데, 업무 특성상 일이 들쭉날쭉하게 들어와 늘 아슬아슬한 느낌이었어요. 이대로는 내가 원하는 영상 작업을 하면서 못 살겠다는 생각에 지치기도 했고요. 그러던 참에 2008년에 EBS 자연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팀 제안으로 '자연의 길, 올레' 편 촬영을 맡게 된 것이 전환점이 되었어요.
처음부터 조수웅덩이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주에 내려온 것은 아니에요. 이 프로그램 마지막 편 촬영을 하러 제주에 내려와 성산일출봉 조간대 주변 생태를 기록하던 중 곳곳에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가 눈에 들어온 거죠. 무심코 들여다봤는데, 그 안에 놀라운 세계가 있더라고요. 다양한 생물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끊임없이 보였어요. 제주의 조수웅덩이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 영화를 전공하셨다고 했는데, 그 무렵부터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을 꿈꾸셨던 거예요?
"훨씬 전이에요. 제가 네 살 무렵 무거운 장비를 메고 바닷속을 누비는 흑백 TV 속 스쿠버다이버 모습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했던 게 생각납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고 특히 물고기를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낚시할 때 옆에서 잡은 물고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집마당에 있던 작은 연못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기도 하고요.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기 내내 제 기억 속엔 물고기가 있어요. 영화를 전공한 것도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는 갈망이 있어서 선택한 거였어요."
- 갯바위 사이 조수웅덩이를 촬영하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아주 작고 느린 존재가 되어서 들여다봐야 해요. 퇴적물이 많아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부유물로 물이 흐려져서 숨어버리거든요. 수심이 얕아서 따라다니기도 어렵고요. 한 자리에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고 촬영을 하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촬영량도 많고, 몇 시간씩 물속에 엎드려 있는 건 예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