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을 우편투표함중앙선관위가 보존 중인 1987년 대선 구로구을 우편 투표함
한국정치학회 제공
13대 대통령선거는 민주시민과 학생들이 피로써 쟁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적전분열로 그 어부지리를 군사정권에 헌납한 꼴이 되어, 두 김씨와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은 내내 국민의 차가운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진정한 민주문민정부의 실현은 다시금 늦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사회고발과 현실비판에 앞장서왔던 정의구현사제단은 참담한 현실 앞에 암담함을 새겨야 했다.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천주교공동위원회는 12월 17일 성명서 〈모든 민주세력은 '선거무효 선언'을〉에서 "현재까지의 투ㆍ개표 과정을 모두 지켜본 결과 금번 선거는 국민의 한결같은 소망과는 달리 사상 유례없는 부정선거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며, 이번 선거가 무효임을 선언했다.
부정선거로 규정한 이유로 △ 경악! 부정투표함에 도적질 당한 민주ㆍ민권, 구로구청 1만여 시민 밤새워 투표함 사수 △ 릴레이 투표 적발한 감시단원에게 칼질! △ 전국에서 자행된 개표 부정행위 △ 개표 부정사례 △ 전라도 출신 주민만 투표권 말소 △ 때 아닌 정전 소동!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제시했다.
1987년 6월항쟁의 결실인 수평적 정권교체 즉 민간정부 수립을 이루지 못한 책임으로 두 김씨의 단일화 실패에 두는 분석이 많았다. 이와는 다른 견해도 없지 않았다.
1987년에 군부독재정권을 완전히 케이오 시켜서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국가체제를 장악ㆍ유지할 수 있는 능력면에서 손상이 없었어요. 경찰도 민주화 쪽으로 항복해 들어오지 않았고, 군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내부 분열의 조짐이 아직 없었다는 거지요.
아마 YS, DJ가 마음을 일치하여 단일후보를 냈다면, 그리고 그때 정권 차원에서 선거조작이나 여론조작을 했다면 진짜 독재세력을 제압할만한 대봉기 상황에 직면할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4.19 직후 이승만 세력이 총체적으로 몰락하듯이요. 그런데 정권이 조금 망설이며 전선을 후퇴시킨 거지요. 다만 양김 중 한 명이 집권했다고 하면, 군부는 두세 차례 쿠데타를 시도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르헨티나와 필리핀, 스페인의 민주화 과정을 보면, 군부가 두어 차례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1987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점은,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지요. (주석 5)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1974년 9월 24일 강원도 원주에서 '정의'의 기치를 들고 출범하여 유신체제와 5공 군부독재와 싸우는 동안 한국사회의 민주화세력은 크게 성장하였다.
그 중심에 사제단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역할을 하였다.
깃발도 강령도 없는 성직자들의 느슨한 조직이지만 항상 생명력이 넘치고 열려 있었다. 안팎의 질시와 권력의 탄압이 심했으나 움츠리지 않았고 시류에 편승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억울한 일, 정의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들과 늘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의구현사제단의 역할에 비해 학자들의 평가는 지극히 인색한 편이다.
유신ㆍ5공시대에 정의구현사제단의 존재는 어둠속의 횃불이었다. 세상의 불의에 맞서 하느님의 정의를 외치고, 예언자적 발언으로 독재와 싸웠다. 그런가 하면 사제단의 존재로 하여 낡고 고루한 한국천주교(가톨릭)에 신생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교회의 쇄신에도 크게 한 몫을 하였다. 그들은 명예도 보상도 바라지 않았다. 오직 정의와 진실을 찾는 구도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었다.
사제단을 모형으로 해서 설립된 실천불교승가회가 있고, 유사한 명칭의 단체들이 속속 결성되었다. 정의실천법조회(정법회)가 1986년 5월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989년 11월에 출범하였다.
이외에도 민족문학작가회의(1974년), 민주화교수협의회(1987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1988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1989년) 등이 속속 출범하면서 정의구현사제단과 힘을 모아 민주화의 대열에 섰다.
주석
5> 함세웅, <이 땅에 정의를>, 463~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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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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