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대법원 선고가 진행된 가운데 사건 공대위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희훈
성소수자인 해군 여군 대위를 직속 상관과 지휘관이 각각 강간, 임신중절 등 극심한 피해를 끼친 사건.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이 사건의 대법원 선고가 31일 계류 3년 4개월 만에 나왔다.
결과는 아리송했다.
10차례의 강제추행뿐 아니라, 잇따른 성폭행으로 임신 중절에 이르게까지 한 혐의를 받은 1차 가해자이자 직속상관인 박아무개 소령은 무죄를 확정(주심 대법관 김재형) 받은 반면, 1차 피해 이후 해당 사실을 악용해 성폭행을 저지르는 등 2차 가해를 입힌 지휘관 김아무개 대령 사건(주심 대법관 박정화)은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기 때문이다.
1차 가해자 무죄, 2차 가해자 유죄
2018년 4월 1심 군사법원에서 1차 가해자는 징역 10년, 2차 가해자는 징역 8년이 선고 받았고, 그로부터 7개월 뒤 고등군사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 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두 가해자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두 주심 대법관이 각각 다른 결론을 내렸다. 선고 후 피해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대독을 통해 밝혔다.
두 결론은 1시간 간격을 두고 내려졌다. 2차 가해자 사건이 먼저 오전 10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론을 받으면서, 사건 방청인 다수가 오전 11시 진행되는 1차 가해자 사건 또한 비슷한 취지의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차였다. 일부 방청인들은 두번째 선고 직후 법정 밖으로 나오면서 "피해자 진술보다 상관이 화간을 주장하면 무조건 무죄가 나오는 거냐"고 황당해 했다.
사건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0명 규모의 함정에 배치된 유일한 초임 여군이자 성소수자였던 김씨. 군사법원 1심과 항소심 모두 피해자를 '김하나'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직속상관인 박 소령의 혐의는 2010년 9월부터 1년여간 김씨를 강제추행하고 성폭행했다는 것. 범행 장소로 특정된 곳은 음식점이나 모텔 뿐 아니라 근무지인 함대도 있었다. 피해자 진술에 따르면 성소수자인 김씨에게 '남자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1심과 2심 모두 일관되게 박 소령이 직속상관으로서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판결문엔 "박씨가 1차 평정권자이고 분위기를 잡는 사람이었다", "신고하면 제대로 군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힘들었다" 등 피해자의 고충이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