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의 말, RM의 말을 세피아 색으로 그렸다. 뒤에 있는 말머리와 두개의 부조 작품도 테라코타 작품이다.
오창환
3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 전시를 한다. 노실(爐室)이란 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아틀리에를 의미하며, 천사는 노실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권진규 자신의 시에서 따왔다.
시청역에서 내려 시립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전시를 알리는 배너를 보니 살짝 가슴이 설렌다. 서울 시립미술관은 언제 와도 편안하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조각, 회화, 드로잉, 아카이브 등 총 24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지난해 유족이 기증한 작품(총 141점)과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박물관, 리움 등 기관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받은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전시된 작품을 제외하면 권진규의 작품이 거의 다 전시되어 있는 듯하다.
전시장에 가보니 과연 자소상을 비롯해서 여인 인물상, 불상과 예수상, 말을 비롯한 각종 동물상 등 그가 만들었던 조각이 총망라 되어 있다.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이니 작품 소장자들이 모두 협조해서 작품을 대여했다고 한다. 이런 전시를 다시 보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나는 자소상이나 불상에 가장 관심이 갔지만, 도록으로만 보았던 말머리 돌조각도 인상 깊었다. 또 재미있었던 것은 모델링 작업을 할 때 만든 듯한 작은 조각상까지 선보였다는 것이다. 조각가들은 흔히 큰 작품을 만들기 전에 작은 작품을 시험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모델링 작업이라고 한다. 손바닥 반만 한 그런 작품들도 모아서 전시하고 있다.
권진규 선생님의 작품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자체도 훌륭함을 넘어서 감동이다. 어떤 미술관이든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관람객이 다가갈 수 있는 선을 정해 놓는데, 내가 보기에 탈권위주의적인 갤러리일수록 작품과 관람객의 사이가 가깝다.
요번 전시도 정말 가까이서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가끔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어 안내하는 분들이 분주하기는 하지만 좋은 미술관은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방대한 작품이니까 주제를 나누고 주요 작품은 따로 부스를 만들기도 하고, 또 조각 작업의 특성상 정면으로 봐도 괜찮은 작품은 정면 전시를 하고, 입체적으로 봐야 좋은 것은 사방에서 보게 전시를 해 놨다.
작은 작품이 많으니까, 각 작품별로 좌대를 만들지 않고 넓은 좌대를 만들었는데 시멘트 블록과 시멘트 벽돌로 일정하게 쌓아 좌대를 만들었다. 그 위에 약 2cm를 띄워서 흰 상판을 얹었다. 권진규 작품과 잘 어울리고 모던하다.
전시 말미에 권 선생님의 스케치북 25권 정도를 원본과 똑같이 만들어서 전시를 해놨다. 나는 모든 스케치북을 다 살펴보았는데 표지며, 테이프 자국 등까지 다 원본과 똑같이 만들어 놔서 놀랐다. 마치 친구의 아틀리에에 놀러 가서 작업 노트를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