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Edward Col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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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와 문화 전쟁
2018년 평론가 로드 리들(Rod Liddle)은 <타임스>(The Times)를 통해 문화 전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늘날 문화 전쟁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개인으로서 갖는 권리에 대한 것이다. 개인적이기에 적대적이다. 딱 집어 설명하기 어렵다. […] 도덕적 상대주의 대 도덕적 절대주의이기도 하고,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의 대립이기도 하다. 혹은 도시와 농촌의 문제이기도 하고, 런던 대 나머지, 혹은 전통 대 근대, 세속 대 종교 갈등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스로 피해자라고 정의하는 측과 억압자라고 비난 받는 쪽의 갈등이기도 하다. 무엇이든지, 문화 전쟁은 본능적이고 감정적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경제적 인간, 사회보다는 개인이요, 세계주의적·다문화적 인간, 자유 경쟁적 존재였다. 이 정의 하에 성소수자와 소수 인종의 인권 그리고 페미니즘이 성장했다. 하지만, 벌어지는 격차가 주는 불안과 상실감 속에 다시 공동체가 주는 안정감, 전통적 가치, 옛 사회 질서에 대한 향수가 커졌다. 이를 반영한 것이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는 EU로부터 탈퇴, 브렉시트였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재정의하는 브렉시트 과정에서 역사가 소환되었다. 첫 논쟁은 학계 논쟁으로 "영국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영국적인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였다. 의원 내각제 등 제도사 쪽 학자들은 영국만의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민이나 무역 등 사회사와 문화사 쪽은 누군가만의 고유한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며 국수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탈퇴 지지 정치인들은 2차 대전기의 윈스턴 처칠과 애국심을 소환했다. EU 탈퇴를 '독립'에 비유, 윈스턴 처칠의 "침착하라, 그리고 나아가라"의 구호 하에 독일 대공습을 이겨냈던 '블리츠(Blitz) 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2차 대전은 애국심의 승리가 아니었고 미국과 소비에트의 도움 없이 이길 수 없었다며 역사를 정확히 보라는 비판이 따랐다. 몇 년의 진통 끝에 영국은 "유럽과 함께 가지만 그 일부로 편입되지는 않겠다"는 윈스턴 처칠의 원칙을 계승, 자국 독자성을 지향하는 보리스 존슨을 선택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2020년 BLM 운동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영국 내 흑인 사회 형성과 현재 서구 백인 헤게모니 형성의 결정적 계기였던 제국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브리스틀의 노예상인 콜스턴 동상
2022년 1월, 공공기물 파손 혐의로 기소된 "콜스턴 4인방(Colston Four)"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의 혐의는 2020년 6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남서쪽 항구 도시 브리스틀 시위에 참석한 청년 4명은 반인종주의 구호를 외쳤다. 미국 BLM 운동에 호응, 영국 전역에서 진행된 시위였다. 이들은 콜스턴 동상을 무너뜨리고 굴려서 근처 항구까지 옮겼고 강에 빠뜨렸다. 공공기물 파손죄로 기소된 후 '콜스턴 4인방'이란 별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