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치는 동안 가족들 걱정, 코로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음악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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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R 검사를 받은 날은 재택 근무를 하게 됐는데,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대단히 낯설었다. 일을 하고, 혼자 밥을 차려 먹고, 중간 중간 아이 상태를 전화로 전달받으면서, 간혹 생각이 날 때마다 피아노를 쳤다.
연습하는 곡들이 마침 김광민의 '학교 가는 길'이나 영화 <스팅>의 주제곡인 'The Entertainer' 같은 발랄한 곡들이라 피아노를 치는 동안 가족들 걱정, 코로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음악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다.
다음 날 오전 PCR 결과 음성 판정을 문자로 통보받았지만, 오후가 되자 나도 목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주말부부를 하는 남편도 아이와 같은 날 확진 판정을 받아 주말이지만 내려오지 못했다.
오롯이 혼자 있는 주말이라니! 주말이라 조금 늘어져서 집안 정리를 하고, 피아노를 쳤다. 이 곡 저 곡 쳐보다가 늦은 점심을 차려 먹고, 너무 피곤하여 안 자던 낮잠도 한숨 잤다.
자고 일어나니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 머리가 무겁고 멍한 데다가 여러가지 걱정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고는 또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다음 날 아침, 눈물과 콧물을 동반한 감기와 함께 잠에서 깼다. 우려했던 대로 자가진단 키트 두 줄이 떴다. 비를 뚫고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한 주간 도대체 코를 몇 번이나 찌른 것인지, 더 이상 세는 것이 무의미했다.
오후가 되니 열이 나고 목이 아파오면서 증상이 더 심해졌다. 집에 있던 약을 먹으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 밥은 배달을 시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역시나 나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피아노 선생님께 다시 한번 연락을 드려서 피아노를 한 주 더 미루자고 했다. 피아노 레슨을 3주 동안이나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연습은 더 열심히 했다. 아이 없이 집에 혼자 있고 나가지도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났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팠고, 책을 읽자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 환기할 겸, 바깥 공기를 쐴 겸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힐링이었다. 건반을 두드리며 피아노를 치는 행위에서 오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고, 연습에 연습을 더하며 칠 때마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음악 소리에 집중해 음악 감상을 했다. 내가 만들어 낸 음악에 내가 힐링이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몸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항생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약을 먹어서인지 약간 멍했다. 심지어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인후통이 너무 심해서 입을 닫고 생활을 했다. 평소라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대화가 그리워 누군가와 통화라도 했을텐데, 호되게 앓던 3일간은 침 삼키기도 무서울 정도의 인후통에 시달렸다. 전화 통화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컴퓨터나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서 철저히 고립된 생활이 지속 되었다. 유일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피아노였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악보에 그려진 음표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피아노를 치다 보면 온 가족이 코로나 확진이 되고 아픈 상황이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피아노 앞에 앉은 시간이 길어지며 나는 더듬 더듬 한 손씩 치던 곡을 마침내 두 손으로도 매끄럽게 치게 되었다. 지난 두 달 간 배운 곡들을 죄다 처음부터 섭렵할 기세였다.
다시 조금 업그레이드 된 일상으로
그 다음 주말, 자가 격리가 끝난 남편과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몸에 배인 습관처럼 틈만 나면 자연스럽게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다. 연습 소리를 듣던 남편과 아이가 피아노 방으로 모여 들었다.
"와~ 당신 대단한데?"
"엄마 멋져!"
격리 기간 동안 한층 늘어난 나의 피아노 실력을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 코로나 확진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랄까. 무섭게 증가세를 보이던 오미크론 확산이 잠시 주춤하는 듯하다.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코로나 확진이 온 가족을 휩쓸고 지나가고, 나는 항체와 더불어 조금 업그레이드된 피아노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하 듯, 이 모든 과정이 부디 단계적인 일상 회복으로 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건강도, 피아노 레슨도.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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