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꽂이로 잘 자라는 식물들
이나영
가지를 잘라 물에 꽂아도, 흙화분에 꽂아도 금세 알맹이가 달린 뿌리를 만들어 쑥쑥 자란다. 어찌나 번식력이 좋은지 여기저기 꽂아두고 키우다보면 화분의 개수가 쑥쑥 늘어간다.
스킨답서스나 워터코인, 아이비 같은 아이들은 잎이 무성해지면 가위로 툭툭 잘라 물에 꽂아놓으면 싱싱하게 잘 자란다. 이렇게 수경재배가 가능한 식물들은 실내에서 깔끔하게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컵에 반쯤 몸을 담그고 초록색 잎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면 청량한 느낌이 든다.
햇빛의 양과 기온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고 물주기를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해야만 잘 자라는 까다로운 식물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이렇게 생명력이 있고 어디에서나 쑥쑥 잘 자라는 화초는 편한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담담하고 건강하게, 어른스럽게
어릴 적, 우리 집이 이사를 자주 다닌 덕에 나는 전학을 많이 다녔다. 낯선 학교의 어느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 옆에 서서 "오늘 우리 반에 새로 온 학생을 소개할게요"라는 소개의 말을 듣던 순간이 내게는 여러 장면 남아있다. 어릴 땐 그 순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내성적이고 말이 없던 내가 새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매번 어떤 마음이었을까. 크게 힘들었다거나 상처로 남은 기억까지는 없는 것을 보면 무탈하게 적응은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1년이나 2년을 다니고 또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상황이 생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마음을 나누는 친한 친구도 별로 없었고, 학교에 마음을 깊이 붙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4학년 때 전학을 간 학교에서 제일 오래, 졸업할 때까지 다녔는데 그 시기에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내 의견이나 감정도 드러내놓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모습은, 가지가 잘려진 식물이 새로운 흙과 환경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과 닮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친절하고 다정한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에게 맞는 햇빛과 양분이 되어 비로소 마음을 풀어놓고 편안한 상태로 나를 개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지금은 새롭고 낯선 환경에 놓여져도 큰 불만 없이 무던하게 적응하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곤 한다. 물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 앞에서 머뭇대고 긴장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일단은 새로운 도전이나 시도를 즐기는 편이 내 삶을 더 다채롭고 커다랗게 만들어준다고 믿고 있다.
흙에서 자란 스킨답서스가 물이 담긴 컵 속에도 뿌리를 내리는 일도, 가지가 부러진 금전수를 흙에 꽂아놓으면 언제 아팠었냐는 듯 반질반질한 잎사귀를 내어놓으며 길게 자라는 것도 식물 각자에게는 나름 힘든 일일지도 모르고 적응하고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은 무던하고 조용히,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고 새생명을 피워낸다. 새로운 일이나 어려운 도전 앞에서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고, 너무 오래 긴장하지 않고 담담하고 건강하게, 어른스럽게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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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 잘 자라는 화초,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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