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 마리 규모의 울진 개농장
이현우
213시간, 울진 산불이 진화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역대 최장 시간이다. 막대한 재산 피해가 있었고 서울시의 약 1/3에 해당하는 삼림 면적이 불에 탔다. 다행히도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죽거나 다친 동물들의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다만 동물 현황은 재산상 피해를 추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악된 것으로 보인다. 야생동물 피해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산불 소식이 도배될 무렵, 동물권 단체 케어의 SNS를 통해 산불에 타 죽은 동물의 소식을 보게 되었다. 개농장의 뜬장 위에서 불을 피하지 못하고 새까맣게 탄 닭과 개의 사체였다. 이미 산불은 진화된 상태였지만 까맣게 탄 나무들은 산불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말해주었다. 만약 산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나는 산불이 완전히 진화된 개농장에서 산불만큼 잔혹한 또 다른 재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개농장은 인간에 의해 설계된 재난 현장이다. 지난 17일 경북 울진에 150여 마리의 개가 있는 농장을 방문했다. 이 농장은 농장주가 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여 현재 동물권 단체 케어가 관리 중이다.
개들은 모두 뜬장에 갇혀 있었다. 뜬장은 동서남북 사면뿐만 아니라 바닥까지 철조망으로 엮어 배설물이 아래로 떨어지도록 만든 장이다. 간신히 몸을 누이고 밥그릇과 물그릇 정도만 놓일 수 있는 정도의 크기. 뜬장마다 크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략 1㎡(0.3평) 정도 되었다. 뜬장 아래는 털과 배설물이 엉켜 있었고 농장은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다.
왜 개가 산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바로 답이 나왔다. 불에 타서 죽은 개가 있던 뜬장 아래는 똥이 하얗게 탔다. 불씨가 바람에 날려 박스가 쌓인 곳에 내려앉았고 뜬장 아래 쌓인 똥에 불이 붙었다. 결국 개는 꼼짝없이 불지옥에 갇혀버린 것이다.
동물들은 산불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속수무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