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의 국회 의사당에서 열린 국정연설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2.3.1
연합뉴스
개전 일주일째인 3월 1일 바이든은 워싱턴 의회에서 "나는 유럽 동맹국 통합에 셀 수 없는 시간을 할애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제기된 지난해 말부터 2월 말까지 진행된 외교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위 말은 서구가 견고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서구의 균열은 작년 여러 번 감지되었다. 지난 G7 당시, 영국과 EU는 '소시지 전쟁'으로 불리는 무역 분쟁 중이었고 민주주의 진영의 결속을 원하는 바이든 구상에 영국을 제외한 회원국과 EU는 경제적 파장을 우려해 거리를 두었다. 이후 미국은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는 EU와, 9월 AUKUS 출범 때는 프랑스와 마찰을 빚었다.
다음으로 위 말은 서구 재결집이 이번 외교전의 핵심이었음을 시사한다. 바이든의 운신 폭은 좁았다. 우크라이나 비핵화 당시 안보를 보장했으나 NATO를 동유럽 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은 과거 때문이다. 사실상 유일한 카드가 경제 제재였다. 전쟁 여부 결정시 경제 제재 강도를 계산해야 하는 푸틴 입장에서 서구의 결집 강도는 제재 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잣대다. 반면, 경제 제재의 극대화된 효과를 내야 하는 바이든으로서는 꼭 풀어야 할 숙제였다.
마지막으로 위 말은 동맹 통합 과정이 용이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경제 제재는 결국 쌍방 피해다. 때문에 경제 제재로 입을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라는 요청이요, 크게 보면 한 세대 이상을 떠받쳐온 신자유주의의 실용주의 노선을 뒤집는 데 동의하라는 뜻이다.
바이든이 내놓은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NATO 조약 5조에 따른 공동 방위는 그 중 하나다. 유럽의 군사력과 푸틴의 지속적 팽창 시도를 고려했을 때 서구에 NATO와 미국의 군사력은 당분간 반드시 필요하다. 전쟁 개시 후 유럽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나토 영역의 1인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말의 근거는 여기서 나온다. 바이든 역시 3월 1일 "푸틴이 서쪽으로 진출할 경우, NATO 방어를 위해 (우리 군대가) 유럽으로 갈" 것임을 재확인했다.
체스 게임으로 비교되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현재 바이든은 전쟁의 속성인 결집력, 파괴력, 개혁성, 생성력을 완벽히 숙지하며 판을 주도하고 있다.
푸틴과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외교적 해결을 견지함으로써 압도적인 국제 사회 지지를 획득했다. 자체 안보 능력이 떨어지는 유럽을 NATO로 집결하게 만들었다. 독일과 EU를 안보 영역에 끌어들임으로써 트럼프식 "미국 먼저"가 아니더라도 NATO 내 미국의 재정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단합된 유럽이 최대치로 끌어올린 대러시아 경제 제재 덕분에 미국은 태평양쪽 중국과 상대할 여유를 얻었다.
바이든의 최종 목표는 의회 내 발언 "역사가 쓰일 때, 러시아의 쇠락을 설명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될 것"에 나타난다. 하지만 낙관은 이르다. 우크라이나 내부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장기전으로 갈 경우 서구의 결집이 현재의 강도로 지속될지 확실치 않다. 아직까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중국 반응도 변수다. 11월 중간 선거라는 내부적 불안 요소도 크다.
국제 질서 재편의 다음 격전지가 될 아시아에 속한 한국은 유럽을 세심히 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독일과 같은 역사적 제약을 가진 일본의 움직임을 읽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국제적 대의에 집결하면서도 이를 활용, 미해결 국내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유럽 사회의 역동적 모습에서 영감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재편될 질서 내 위치 선정에 대한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전환기엔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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