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승 회원
박영록
- 참여연대와 2017년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으로 인연을 맺으셨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수도원에 입회하면 1~2년 정도 '지·청원기'라고 해서 촘촘히 짜인 시간표에 따라 통제된 생활을 해요. 하루 5~7번 기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맡은 집안일과 노동을 수행하지요.
그리고 또 다시 1~2년 정도 수련기를 거치는데요, 외출이나 휴가 없이 외부로부터 고립돼서 기도와 노동만 하는 단순한 생활이에요. 그리고나서 5~6년은 1년마다 서약을 갱신하면서 수도원 생활을 이어가는데, 그때 비로소 일주일에 한 번씩 본인의 관심 분야를 정해 바깥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죠.
다른 형제들은 공부방, 노동사목회관, 서울역 쪽방촌, 노인요양원 또는 알코올중독병원 등에서 봉사를 하는데, 저는 '시대의 징표를 읽어서 종교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과거 전교조 활동 때 접했던 참여연대를 선택했어요."
- 다른 신부님들도 미카엘 신부님의 참여연대 활동을 알고 계신가요?
"이곳에선 모두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는데요.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우편물이 오는 걸 보면 시민단체에 후원하는 형제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제가 참여연대에 후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겠죠? (웃음)
후원뿐만 아니라 수도회 형제 대부분이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지금 이 시간에도 경남 산청 수도원에서는 다같이 모여 기후위기, 생태에 관한 연수를 진행하고 있고요."
- 정식 사제가 되셨는데, 앞으로 어떤 사제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종신서원 하기 전에 방문했던 인도 북동부 롱저리에서 만난 브라이언 신부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신부님은 그곳에서 학교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시멘트벽에 슬레이트 지붕 얹은 곳에서 나무판에 글씨를 쓰는, 아주 열악하고 가난한 곳이었죠. 저희가 3년마다 인사이동이 있어서 신부님이 마침 그곳을 떠나게 되면서 저한테 그러더시라고요. 몇 년 후에 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요.
'여긴 전기도 물도 없고 시설도 열악한데 왜 이런 곳에 다시 오려고 하느냐?' 물었더니, 아무도 롱저리에 안 오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라도 와야 한다는 거예요. 이곳의 신자들에게도 신부가 필요하다면서요. 그 말을 듣고 참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요. 그 뒤로 신부는 신자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곳에서 먹고 입고 자고,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돼 있잖아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보호 받는 입장이기도 하죠.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좀 교만한 것 같고요, 우선 제가 서있는 위치에서 주어진 일에 충실하려고 해요."
- 마지막으로 미카엘 신부님에게 '참여연대'란?
"로봇청소기요. 직접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사람들이 로봇청소기를 돌려놓고 다른 일을 하더라고요. 제가 신경 쓰지 않아도 참여연대는 국회나 정부를 감시하고, 민생, 노동인권 등을 위해 일해주시잖아요. 참여연대가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다양한 분들이 함께 활동하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그런 참여연대에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또 참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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