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리인생학교 5기 친구들과 함께 일몰보러 간날...
꿈틀리인생학교
꿈틀리 졸업 후에도 꽤 오랜 시간을 그리워했다. 안 그런 척했지만 그리웠다. 그리움에 갇혀 일상에 충실하지 못했다. 많은 과제를 놓쳤고,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나를 돌아보았다. 어느덧 열아홉이었다. 십 대 마지막 일 년마저 과거에 갇혀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는 정말 꿈틀리를 졸업하고자 한다.
꿈틀리 졸업 후 이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우학교를 커다란 꿈틀리 혹은 꿈틀리의 상위 버전으로 기대했기에 무척 실망스러웠다. 기숙사와 통학, 비인가 학교와 인가학교의 차이를 넘어선 다름이 존재했다. 실망감은 순전히 나의 것이었지만, 나는 학교를 탓했다. 그 당시 나에게 '대안'이란, 오로지 꿈틀리에서의 경험뿐이었다. 꿈틀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우학교를 대안스럽지 않다고 규정했다. 소위 말하는 깨어있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며 실망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계절이 바뀔수록 거만함과 실망감은 줄어갔다. 여러 이야기 장과 공론장을 거치며 학교를 조금씩 이해해갔다. 관계가 깊어지며 새로운 모습의 친구를 발견해갔다. 방식이 다를 뿐, 누구도 허투루 삶을 살아가지 않았다. 그제야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이우는 이우일뿐 꿈틀리와는 달랐다. 여전히 학교에서 즐거운 일만 생겨나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즐겁게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이우학교에서는 내 욕망에 집중했다. 내가 원하고, 느끼는 것에 충실했다. 그래서 관계에 힘을 쏟지 못한 채 지냈다. 받은 마음만큼 돌려주지 못했다. 생일날 과분한 선물을 받고 감동해도, 정작 그 사람의 생일에는 선물을 챙겨주지 못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관계 맺고 끊는 것도 내 마음대로였다. 그럼에도 옆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 참 고맙다.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배우고, 영향을 받는다.
나는 말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이었다. 낯선 환경에서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물을 먹고 싶다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사소하고 당연한 욕망도 꺼내지 못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타고난 탓도 있지만, 스스로가 자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질문은 언제나 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꿈틀리에서 이 질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하필 꿈틀리였을까? 추정하는 이유는 많지만 명확하게 설명해내지 못한다.
이우에서는 질문의 주체를 바꾸었다. 시선을 나에게로 옮겨왔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왜 존재해야 하는 거지?" 여전히 말하기를 주저한다. 다만 이제는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말하기가 두려우면 편지를 쓰고, 글로도 담아낼 수 없을 때면 노래나 시를 선물한다.
'사유하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을 처음 접한 건 선생님께 받은 편지에서였다. 그 당시 편지를 받고 뜻을 찾아봤다. 국어사전에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라고 적혀있었다. 문득 사유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지 싶었다. 지금도 이 다짐은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