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아틀리에. 오른쪽 아래 손 모양은 아틀리에에 비치된 스템프다.
오창환
성신여대역 1번 출구에 내려서 미아리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어렸을 때 이 근처 학원에 다녔다. 권진규 선생님이 73년도에 작고하셨으니까 이 근처 어디서 지나쳤을 수도 있었겠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골목을 따라가면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가 있는 곳이다.
권진규 선생님은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나서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일본 미술계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은 그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6년간 결혼 생활을 했으나 1959년 부친이 돌아가시자 귀국한다. 귀국 후 성북구 동선동에 직접 작업실을 만들고 197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곳이 권진규 아틀리에다.
앙투안 부르델은 파리 미술학교에서 로뎅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등 작품을 제작하며 로뎅과 함께 조각계의 3대 거장에 꼽히기도 하였다. 시미즈 다카시는 파리에서 5년간 부르델의 지도를 받은 제자였다. 그가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교수였고 권진규의 스승이었다.
몇 년 전, 일본 무사시노 대학에 갈 기회가 있었다. 동경 시내에서 1시간 가량 전철을 타고 가서 또 버스로 갈아타고 20분 정도를 더 간다. 일본 사립 미술대학 중 최고라고 해서 서울의 홍익대학교를 생각하고 갔지만 무사시노 대학은 홍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주택가 한가운데 너무도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무사시노 캠퍼스는 아담하고 예뻤다. 세상사에 신경쓰지 않고 무언가를 파고들기에 좋은 장소인 듯하다. 권진규 선생님도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작품 제작에만 몰두하셨다고 하는데, 아마 이곳 생활이 권진규 선생님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권진규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아틀리에는 폐허로 남아 있었는데, 선생님의 여동생 권경숙 여사께서 2006년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하여 시민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지금 이곳은 권진규 선생의 정신을 잇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창작공간 작가 공모를 통해 예술가를 선정하여 살림채를 창작공간으로 제공하며, 권진규 아틀리에는 매월 1회 사전예약을 통해 개방하고 있다.
권진규 선생님이 1922년 4월 7일생이시니까 올해로 탄생 100주년이다. 앞으로 아틀리에를 더 자주 개방하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또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3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하고,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 미술관에 상설 전시실을 만든다. 작가로는 천경자에 이어 두 번째 서울시립미술관의 상설전시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