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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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소소하지만 충만한 아침을 시작하는 듯했던 그 날, 나는 대학 선배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인생의 좌표가 되는 선배였다. 지식과 지혜, 그리고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위인이었다. 그런 선배를 늘 부러워했고 닮고 싶었으나 나는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선배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자양분을 얻는다고 여겼다.
선배는 어느샌가 대단한 자산가가 되어 있었다. 소위 말하는 파이어족(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 된 것이다. 이미 대학생 때부터 주식, 부동산이 준비되어 있던 아주 남다르던 선배였다. 단순히 많은 부를 축적해서가 아니라,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남달랐던 혜안과 실행력은 늘 나를 자극했다.
그 선배의 행보를 듣는 것은 나에겐, 중국 무협지를 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지,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고난과 결핍을 어떻게 견뎌내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 밖의 영역인 것이다.
마침 나는, 이사를 고민 중인 터라 고민을 털어놨다. 큰아이의 초등입학 전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신랑도 왕복 출퇴근으로 3시간을 넘게 보내는지라 서울 집을 정리한 후 경기도로 내려가야 할까, 묻는 내 말에 선배는 "너는 더 노력하고 고생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 이 이상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금도 양가 도움 없이 애 둘을 키우고 일도 하는데? 나는 나의 힘으로 지금까지 왔는데?'
누구보다 씩씩하게 내 삶을 나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겼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애썼다. 나를 지탱하던 무언가가,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뚝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방러였다. 서울, 이 도시에서 혼자 공부하고 생활하며 어렵게 취업을 했다. 취업한 뒤에 어땠는가? 남들 승진할 때 승진하지 못했고 남들 받는 월급만큼도 받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아주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혔다.
내가 더 공부하고, 내가 관련 자격증을 더 따고, 영어도 더 잘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무엇인가를 했다. 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서울 생활이었다. 그렇게 숨이 턱 끝에 차도록 달려야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찍 경제적, 정신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했기에 무엇이든지 나의 힘으로 해치웠다. 결혼이든, 내 집 마련이든 그러했다. 싱글일 때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과 반지 하나만 주고 받고 결혼을 했다. 소위 스드메, 다이아반지, 시계로 이어지는 것들에 언감생심 욕심도 내질 않았다.
지금 이 도시에서 버티는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