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6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최악의 참사 홍제동 화재 사건 현장을 정리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사진자료.
김진영
이날 새벽에 화재 신고가 최초로 접수된 후 가장 가까운 서울서부소방서(현 은평소방서)를 비롯한 인근 소방서의 소방차 20여대와 소방관 46명이 출동했으나, 골목에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으로부터 100m 떨어진 곳에서부터 소방호스를 끌고 뛰어 진화작업을 시작했다. 구조차량도 주차 차량으로 인해 진입할 수 없어 5명의 구조대원들이 25kg이 넘는 장비들을 직접 들고 200m 가량을 달려서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대의 진화 시작 5분여 만에 집주인 및 세입자 가족 등 7명을 무사히 대피시켰지만 "아들이 저 안에 있어요"라는 다급한 구조요청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불길이 채 잡히지도 않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30년 넘은 건물 무너져 소방관들 건물 속에 매몰
오전 4시 11분, "꽝" 하는 소리와 함께 2층 주택 전체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3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이 소방수를 흡수하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갑자기 무너졌다. 소방관 10명이 무너진 건물 속에 그대로 매몰되었으며, 인근에 있던 소방관 3명도 날아온 파편에 맞아 쓰러졌다.
불법주차 차량으로 중장비조차 진입할 수 없어 시내 11개 소방서에서 도착한 구조대원 200여 명이 소방호스 대신에 삽과 망치를 들고 동료를 구하기 위해 무너진 콘크리트를 꺼내며 필사의 구조를 했다. 그 결과 3명의 소방관을 구조해 냈으나 6명의 주검을 안아야 했다.
그날의 화재는 "왜 늦게 다니느냐"는 꾸지람을 들은 아들이 어머니를 때린 다음 생활정보지에 불을 붙여 자신의 방과 어머니의 방에 차례로 불을 지른 것이 시발점이 됐다. 화재범으로 지목됐던 아들은 이미 몸을 피했고, 아이러니하게도 화재범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소방관들은 불구덩이에 묻히게 된 것이었다.
이 사고로 결혼을 앞둔 1년차 소방관과 20년차 소방관 등 6명의 대원이 순직했다. 박동규 소방장, 김철홍‧박상옥‧김기석 소방교, 장석찬‧박준우 소방사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방화범인 집주인 아들은 불길이 크게 번지자 친척집으로 달아났다가 그날 오후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현주건조물방화 및 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지만, 1989년경부터 정신 질환으로 세차례나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심신미약 등을 인정받고 징역 5년 형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