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남소연
지난 21일 열린 대선후보 4자 토론을 뜨겁게 달군 장면 중 하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우리도 기축통화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언급한 부분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즉각 이를 두고 "가슴이 웅장해진다"며 조롱했고, 이재명 저격수를 자처하는 윤희숙 전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 "최고의 똥볼을 찼다"며 비난에 가세했다.
산으로 간 기축통화 논란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에서 팩트체크가 나왔으니 길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엄밀한 의미에서 과거 금본위제 하에서 금이나 파운드 스털링,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중지 선언 이전의 미국 달러화 같은 기축통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디까지 기축통화인지 국제적, 형식적 기준선도 있을 리 없다. 결국 대중과 전문가들의 주관적 인식에 의해 설정된 기준에 의지해 가릴 수밖에 없는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 바스켓(SDR)에 담기는 통화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국제결제 비중이나 석유대금 결제의 기준통화 등 통화의 종합적 파워와 신용을 토대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수 보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달러만이 기축통화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보수언론들은 대부분의 생활인에게도 기축통화는 달러로 인식되고 있고, 기껏해야 유로나 엔 정도까지가 '힘센 통화'로 이해된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해 이재명 후보의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데 열중했다.
정치 공세가 이어지면서 정작 이 이야기가 왜 등장했는지는 깔끔하게 무시됐다.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한민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채무를 늘리기가 어렵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같은 취지로 이 후보를 공격했다.
'기축통화국이 아니면 국채발행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채발행을 통한 확장재정을 반대하기 위해 한국 보수가 활용해온 오랜 논변이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는 이 논변의 허구성을 지적하기보다는 한국도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반론하는 바람에 논란을 키웠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정시장위원장을 맡고 있는 채이배 전 의원이 해명한 것처럼 경제의 건강함을 강조하기 위한 예시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기축통화국'이라는 표현을 써버린 만큼 이런 오해를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민주당계 정치인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부강한 대한민국이라는 그림을 지나치게 갈구하는 태도가 있고, 이게 이 후보의 발언에서 무의식 중에 드러났다고 본다. 때문에 아쉽게도 기축통화국이 아니라서 국채발행에 제약이 있다는 주장을 제대로 논박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보수언론은 덕분에 저 논변의 허구성을 들키지 않고,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으로 확장재정의 선두에 선 대표 정치인의 이미지를 훼손함으로써 우회적으로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기축통화와 국가부채비율 연관 짓는 오래된 미신
일단 주요 결제통화인 달러와 유로 정도를 기축통화로 간주하고 이야기하자면, 주요통화국들은 애초에 상대적으로 강력하고 안정적이고 신뢰성 있는 경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주요 거래 통화로 인정된 것이다. 높은 경제 건전성 덕분에 낮은 비용으로 재원조달이 가능하고 이에 따라 국가부채의 비용 부담 능력도 높아질 수 있다. 기축통화국이라는 칭호는 가슴팍에 붙은 훈장 같은 것이다. 능력을 인정받아야 훈장을 받을 수 있지만, 훈장 자체가 훈장소유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기축통화 여부가 국가부채비율을 정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지 검증해보려면 국가의 재정 규모, 무역거래, 외환시장의 특성 등 다양한 지표들을 성공적으로 통제하는 엄밀한 방법론을 사용한 연구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과문한 탓인지 그런 연구는 보지 못했다.
적당히 자의적으로 기축통화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을 골라서 비기축통화국과 국가부채비율을 비교하는, 경제단체 산하기관이 제공하는 보도자료의 수치만 인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건 강남에서 태어난 아이가 비강남 출생자보다 미래소득이 높다는 통계로부터 자녀의 미래를 위해 강남 원정출산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기축통화가 달러뿐이라고 상정하는 이른바 '다수설'을 따른다면, 비교대상은 미국뿐이라 합리적 통계 검증조차 불가능하다. 그냥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니라서 안 된다는 하나마나한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수언론이 이 후보의 말을 팩트체크하면서 미국만이 기축통화국으로 대체로 인정된다고 보도하며 이 후보의 말이 얼마나 허황된지를 부각시켰다. 그런데 실상 보수언론이 허구헌날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니 국채발행 하지 말라고 말할 때는 유로화나 엔화도 기축통화임을 전제하고 비교하는 이중성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안철수의 착각... 국채 해외수요가 많지 않아 안된다는 주장의 맹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