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불가분의 관계
언플래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독만 해서는 글이 늘지 않습니다. 가까운 지인을 빌려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는 1년에 200권씩 10년 넘게 독서해 온 독서광입니다. 200권 곱하기 10년 하면 2000권인가요? 그만큼 독서량도 상당하시고요.
경력만큼 독서 수준도 높으신 분입니다. 독서력만 본다면 저보다 힘이 세다고 할 수 있죠. 연간 200권에 달하는 책을 읽은 기간은 고작 1년쯤이고, 자신 있게 독서 인구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분에 비하면 책 읽는 어린이에 불과합니다. 유치부로 가야죠.
다만 쓰기 종목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글로 표현하는 힘은 제가 조금 센듯합니다. 그분 글을 읽다보면 조금 혼란스러울 때가 생깁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다시 첫 문장으로 가 반복해 읽어야 합니다. 핵심을 찌르지 못한 채 그 주변부를 맴도는, 불필요한 문장을 남발한 까닭입니다.
반면 주저리 없이 쓰인 제 글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읽힙니다. 문단 생김새도 그럴싸하고요. 한 번에 슥 읽힌다는 읽는 즐거움이 있죠. 자랑 같지만 그게 본 의도는 아닙니다. 그저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쓰기에 관해 이야기 하는 중입니다.
그분은 저보다 월등하게 많이 읽어 왔습니다. 허나 써본 양은 절대적으로 제가 많았지요. 실제로 글쓰기 시작한 지 몇 개월 안 된 분이었습니다. 비단 그분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뭉텅뭉텅 덩어리진 생각을 글로 푸는 게 한편 다독과 관계없는 일 아닐까, 생각하게 했습니다.
다독가이나 어설픈 쓰기를 해내신(?) 분을 제법 보았습니다. 주술호응에 오류가 있는 건 기본이고요, 한 문장 해석하기 위해 다섯 번 읽어야 하는 건 또 어땠고요(그래도 갸우뚱 할 때면 낭독도 불사했습니다). 그 덕에 쓰는 감은 오직 쓰면서 깨치는 것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쓰기는 씀으로 성장한다는 걸요.
그럼에도 읽기는 쓰기의 양분이 맞습니다. 입력이 있어야 출력이 생기는 것처럼요. 여러 분야에 걸쳐 고르게 입력된 지식(혹은 간접경험)은 모두 쓰기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게 없어 저는 쓸 수 없는 말을 다독가들은 쓸 수도 있겠죠. 허나 다시 말하지만, 많이 읽는다고 잘 쓰게 되는 건 아닙니다.
쓰기 실력이 느는 다독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합니다. 하나는 의식적으로 '글'을 읽는 것(그러니까 단순히 텍스트를 읽어 나가는 게 아니라, 작가가 '어떻게 썼나'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읽는 것), 다른 하나는 읽고 '쓰는' 것입니다. 결국 써야 글력(쓰는 힘)이 생기거든요. 프로틴(단백질)을 아무리 많이 마신들 웨이트 트레이닝 안 하고야 근육 생길 턱이 없는 것처럼요. 그래서 오늘은 의식하며 읽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