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바람개비 허수아비이 메마르고 언 갈색의 대지에서 저 혼자 밭을 지키는 바람개비 허수아비는 무심히 돌고 있었다.
황승희
엊그제는 밭에 다녀왔다. 올해 밭농사 첫 출근인 것이다. 배추와 양배추를 수확한 때가 작년 11월 말이니 밭에 마지막으로 다녀가고 두어 달만이다. 가을 농사 마치고 다음 농사 시작 전까지는 엄마랑 제주도라도 한번 다녀오자 하고도 이래저래 시간이 가버리고 이렇게 농사철이 왔다. 엄마한테 미안하고 나도 아쉽다.
두어 달 동안 내버려 둔 밭은 나름대로 괜찮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배추 뽑으면서 다듬어 버려 놓은 배춧잎은 그대로 말라 널브러져 있고 고추 밭고랑의 비닐은 찢긴 채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의 습작 같은 느낌이랄까.
이 메마르고 언 갈색의 대지에서 저 혼자 밭을 지키는 바람개비 허수아비는 무심히 돌고 있었다. 아빠가 버려진 선풍기 날개로 만든 것인데 제 몫을 다 하고도 남는다. 제법 그 돌아가는 모양새와 나름 덜그럭 굉굉굉 소리가 새들에게는 두려움을 주나 보다.
살아있는 것도 있다. 감나무에 이파리가 움트기엔 아직 날씨가 이르지만 분명 싹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하며 아주 옹골지게 그 자리에 서있다. 성깔 있는 가시를 위용 있게 뻗은 대추나무도 살아있다. 대추나무는 과실수 중에 열매가 가장 늦게 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대추나무를 심부름 나무라고 한다고 지난 봄날에 군산 대야장에서 나무를 사 오며 아빠가 이야기해주었다. 늦게 온다고 심부름 나무라니 옛 분들의 해학이 너무 재미있다. 작년에는 땅에 뿌리를 자리 잡느라 열매에 신경을 못썼을게다. 올해는 감과 대추가 달릴 생각을 하니 흐뭇하다.
밭 한쪽에 한고랑의 마늘도 살아있다. 겨우 내내 주인이 돌보지도 않는데 저 혼자서 군산의 바다 바람을 다 이기고 눈을 맞으며 단단해졌다. 그러고 보니 선풍기 날개 허수아비와 감나무, 대추나무 군단이 양쪽에서 진을 치고 죽은 것들과 산 것들을 모두 지켜준 것 같다.
시금치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까닭은 비닐하우스가 여러 날을 바람에 펄럭이다가 귀퉁이 한쪽의 비닐이 젖혀지면서 그만 구멍이 크게 났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코끼리 만한 찬바람이 슝슝 들어갔으니 시금치가 쑥쑥 자랄 리가 없지. 아직 애송이라 다음 주정도면 샐러드 해 먹기 딱 좋은 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