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슈미트의 All of Me 연주 장면우람한 팔뚝으로 클러스터 기법을 시전하고 있다.
피아노 가이즈 유튜브 화면 캡처
곡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른 순간 존 슈미트가 우람한 팔뚝을 검은 건반에 수직으로 내리꽂는데,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대한민국 선수가 고난이도의 점프를 돌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착지하는 것 같은 짜릿함이 느껴졌다. 이건 못 참지! 바로 인터넷을 뒤져 악보를 내려받아 인쇄했다.
리듬도 복잡하고 템포도 빠른 데다가 검은 건반도 많이 눌러야 해 제법 까다로웠지만, 꾸준한 연습이라면 극복할 수 있겠다 싶어 과감히 도전했다. 클러스터 기법이 등장하는 부분을 연습하는데, 팔뚝으로 검은 건반을 한꺼번에 눌러도 소리가 지저분하지 않고 곡의 흐름과 잘 어울리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존 슈미트는 이 상황을 예상했을까?
역시 과도한(?) 연습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고, 시나브로 실력이 향상되어 어느덧 처음부터 끝까지 칠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11월에 아내가 촬영해 준 연주 영상을 아래에 옮긴다(링크 안내 : https://youtu.be/IHYVE7qrBko).
영상을 보니 그 당시 살던 산꼭대기 빌라가 떠오른다. 극기 훈련장도 아닌데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엄청 추웠었지. 그때 거실에 놓고 사용하던 영창 업라이트 피아노구나. 지금은 어디로 팔려나가 누가 연주하는지 모르겠네. 입고 있는 후드티는 구멍이 송송 나서 진작 버렸고, 연주도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거칠고 다듬을 곳투성이다.
하지만 이 영상이 진정 가치를 발휘하는 구간은 11~13초다. 혹시 해당 구간에서 특별한 뭔가를 감지한 사람 있는가? 나는 이 영상을 볼 때마다 그 구간을 꼭 여러 번 듣는다. 거기에는 채 돌이 안 된 둘째 딸이 피아노 연주하는 아빠가 너무 멋있다며 옹알이하는 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정성 들여 촬영해주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옹알이로 응원하는데, 중년 남자의 연주에 한껏 기합이 들어가는 건 당지지사! 이얍! 영상 속에서 클러스터를 시전하는 팔뚝에 한껏 핏줄이 서고 근육이 잡힌 이유다.
유튜브에서 'All of Me'로 검색해 보니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수많은 방구석 피아니스트들이 팔뚝으로 건반을 찍어대고 있었다. 존 슈미트가 이 곡을 처음 유튜브에 올릴 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을 따라 팔뚝샷을 시도하리라 예상했을까? 예술이 자라 온 발자취를 돌이켜보면, 당대에 파격적이고 급진적이라고 여겨졌던 시도들이 차츰 대중의 지지를 얻으며 보편화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헨리 카웰이 1912년에 실험적으로 도입한 클러스터 기법은 백여 년 만에 존 슈미트의 <All of Me>를 통해 드디어 영주권을 획득했다. 클러스터 기법이 넉살 좋게 피아노 기초 교본에 들어갈 날도 멀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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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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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으로 피아노 건반 내리 찍기, 이건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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