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역전새벽시장 모습1(2010)
조종안
군산 인근 농민들이 손수 가꾼 채소와 싱싱한 생선을 차에 싣고 모여드는 새벽시장. 기차가 다니던 시절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이면 장이 서고, 동이 트기 전에 파했다. '도깨비시장' '반짝시장' 등의 별칭도 그때 붙여진 것으로 알려진다. 기차나 시내버스 이용하던 때와 달리 요즘은 남편이나 자녀가 자가용으로 실어다 주거나 합승해서 오기도 한다.
옛 노인들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는 새벽 6시 전후 장이 섰으나 광복 후 교통이 편리해지고 1982년 통금(通禁)이 풀리면서 새벽 2시로 앞당겨졌다가 다시 4시로 늦춰지는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다. 상인들이 취급하는 물품도 처음엔 쌀 위주로 거래됐으나 식생활이 개선되면서 텃밭에서 가꾼 채소와 푸성귀, 과일, 수산물, 일용잡화 등 다양해졌다.
보릿고개 시절 시골 아낙들은 채소나 쌀을 판 돈으로 생선이나 옷감 등 필요한 물건을 구매했다. 첫차로 임피, 이리(익산)까지 오가며 생계를 꾸려가는 '억척 아낙'도 많았다. 쌀을 '되'로 거래한다고 해서 '됫박 쌀장수'로 불렸던 그들은 기차 출발 시각에 늦지 않으려고 쌀을 한두 말씩 이고지고 민간인 통행금지 구역인 철길을 죽어라 뛰어다녔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억척 아낙들은 '떼뽀차(도둑기차)'를 이용하였다. 만약 차장에게 들키면 담뱃값 몇 푼을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위기를 넘기면서 빈한한 살림을 꾸려갔다. '됫박 쌀장수'는 20대에서 40대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경비들과 차장들도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이해했기에 도둑기차 이용이 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역전새벽시장, 1930년대 소설 <탁류>에도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