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
권우성
아무 걱정 없이 발 뻗고 누울 집 하나 없는 세상이다. 나도 이제 어른인데 싶어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보자니 어떻게 집을 구해야 하는지부터 내 벌이로 집을 구할 수는 있을지까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용기를 내 셋방을 얻어 살자니 이런 방에 이런 대우받아 가며 이 정도의 세를 내는 게 맞나 싶다. 가정도 꾸리고 싶은데 나중에 내 아이가 셋방에서 산다고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렇다고 내 벌이에 집을 사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집을 사려면 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7.3년(평균)은 모아야 한다고 한다(2020년 주거실태조사). 그동안 나는 땅 파먹고 살아야 하는가 보다.
우리한테도 집을 줘, 공공 분양 주택
이렇게 모진 세상을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가, 우리 정부가 우리 같이 집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덜어줄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내 소망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정부에서 공공 분양 주택이란 걸 짓고 있다고 한다.
공공 분양 주택은 LH, 지방공사 등 공공 주택사업자가 분양을 목적으로 공급하는 85㎡(25.7평) 이하의 주택이다. 보통 공공 택지를 개발하여 공급하는데 그러다 보니 개발할 땅이 많이 남지 않은 서울보다는 그 외 지역에서 지어진다. 공공 분양 주택에 입주하게 되면 우리는 건축비와 택지비를 더해 산정한 분양가만 부담하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입주에 도전해보자니 말로만 듣던 청약통장으로 인한 순위 경쟁이 만만치가 않다. 청약통장에 돈을 많이 저축한 사람일수록 입주하기 유리한데, 이때 매달 저축하는 돈이 10만 원을 넘으면 안 된단다. 이 때문에 청약통장에 오랫동안 꾸준히 10만 원씩 넣은 사람이 분양받을 가능성이 크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건 공정하지만 일찍 태어나지 못한 사람이 집을 받기 어렵다는 건 당황스럽다.
청약통장이라는 잣대만으로 집을 줄지 말지를 정한다는 게 황당하다는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았나 보다. '특별공급'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 다자녀가구, 신혼부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가구에는 따로 기회를 준다고 한다. 일찍부터 청약통장에 돈을 모으지 못했어도 여러 가지 상황으로 어려운 국민을 먼저 돕겠다고 하니 고맙다. 하지만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어 갑갑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주자 모집 공고문을 찾아본다. 그러다 분양가를 보고 또 당황한다. 올해 1월 입주자를 모집한 경기도 파주시의 한 공공 분양 주택에 들어가 살려면 3~4억 정도의 돈(59.3~84.5㎡=17.9~25.6평)이 있어야 했다. 주변의 다른 아파트보다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억 대의 돈은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마련하기는 어려운 돈이 아닌가도 싶다.
또, 알고 보니 2019년부터 정부가 수도권 민간 택지의 아파트 일부도 공공 분양 주택과 같은 방식으로 분양가를 산정(분양가 상한제)하고 있단다. 이러나저러나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는 거라면 좀 더 넓은 면적의 민간 분양 주택을 알아볼까 하다가 여전히 내 지갑이 민망하다.
거기다 민간 분양 주택은 공공 분양 주택과 달리 가점제가 적용되어 집 없이 산 지는 오래되었는지, 청약통장에 가입한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가족은 얼마나 부양하고 있는지를 본다고 한다. 집 걱정을 덜어보려고 공공 분양 주택이니, 청약이니, 민간 분양 주택이니를 찾아봤는데 선정 기준도, 분양가도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한다.
좀 더 도와줘, 공공 자가 주택
민망해하는 우리 지갑의 새빨간 낯을 정부도 놓치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힘들다고? 그럼 더 도와줄게'라며 이른바 공공 자가 주택 3형제를 공급해보겠다고 한다. ①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② 이익공유형 분양주택 ③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이 그 3가지다. 이름부터 어려워 보이고 숨이 턱턱 막히지만 어쨌든 부끄러운 건 우리 지갑이니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건지 궁금하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우리한테 분양하는 집이다. 알고 보니 집값이 비싼 게 보통 땅값이 비싸서라는데 나는 건물 가격만 내면 되니 그만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대신 토지임대료를 따로 내야 하고 2021년부터 법이 바뀌어 건물도 땅주인인 공공(LH)한테만 팔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마음 편히 발 뻗고 누울 방도 없으니 내 집 마련이 급하지만 토지임대료도 계속 내야 하고 내 마음대로 집도 팔 수 없다고 하니 고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