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의 '배신'은아마 밥 대신 가나초콜릿 세 개를 까먹던 고등학생 때부터, 아니, 집에 들어오는 종합과자선물세트에 눈이 멀던 꼬꼬마 시절부터 예견된 일이었으리라. 강한 자극을 통해 도파민을 분비하다 보면 뇌 속 보상회로 체계의 항상성이 파괴되어 중독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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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변명들
내가 사랑한 빵, 과자, 케이크, 초콜릿, 생크림 등은 '초기호성식품(Hyperpalatable food)'이다. 말 그대로 엄청나게 기호를 자극하는 식품. 정제 설탕과 밀가루, 지방, 소금 함량이 높아 큰 쾌락적 보상을 제공하고 도파민을 급증시키는 음식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단맛에 '내인성 아편유사물질계'(엔도르핀 같은 아편 유사물질의 체내 분비체계)를 활성화시키는 기능이 있어 중독성과도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누가 좀 알려주지!
사실은 대충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어디 갖다 놔도 어정쩡한 자신에 대해 수치심이 들면 우울감이 딸려왔고, 그런 때 케이크를 입에 넣으면 내면의 아이는 칭얼대길 잠시 잊었다. 달콤함은 가장 빠른 보상이자 보장된 위안이었다.
ADHD가 있는 경우 기호품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약물의존 전문가인 칸치안 박사는 이를 '자기투약(Self-medication)' 현상으로 본다. 니코틴과 카페인 등으로 각성 수준이 떨어진 뇌를 스스로 자극해 주의집중력을 높이려 하거나, 알코올처럼 각성 수준을 떨어뜨리는 물질로 불안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매번 소환되는 변명들-충동성, 감정의 불안정성, 낮은 스트레스 내성, 자극 추구 성향-은 중독 문제와도 뗄 수 없는 관계다.
약골인 게 이런 면에선 다행이다. 나도 커피, 담배, 술을 두루 사랑했지만, 이 종잇장 같은 몸이 소량의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에도 흠씬 두들겨 맞는 덕분에 저절로 멀어졌다. 대신 활력을 높이고 기분을 띄워주는 당분의 특성에 그만큼 의존했다. 티가 바로 안 나서 더 문제인 줄은 미처 모르고.
여기에 '정크채식'이 더해지자 마침내 문제가 드러났다. 5년 간, 단백질이 부족해 찾아오는 공복감을 쭉 인스턴트와 밀가루 음식으로 달랬다. 환경을 위한다는 취지는 좋았는데 방식이 엉망이었다. 삼시세끼, 간식, 후식, 야식은 빵-과자-면-빵-과자. 이 정도면 채식이 아니라 '당식'이다.
중독될 바에야 담배나 술, 마약, 도박보단 음식이 나아보이지만, 해악은 예사가 아니다. 아기엉덩이 같던 내 얼굴에 성인여드름이 창궐한 스물일곱 때부터 만성위염, 위경련, 부신피로증후군과 오래도 지지고 볶았다. 웬만큼 먹었어야지. 몸의 균형이 깨져서 더 피곤하고 멍해지고, 그럼 실수가 늘어 우울해지고, 우울해서 또 단 걸 찾는 완벽한 악순환.
지금은 대사증후군과 자가면역질환의 오케스트라가 몸 여기저기를 돌아가며 연주한다. 작년엔 그 때문에 수술까지 했으면서 여전히 내 뇌는 파블로프의 개다. 사둔 과자를 버리려다가도 뜯어서 한 입을 넣고야 마는 나. 씹다가 뱉을지언정 기어이 달콤함을 혀에 휘감아야 평온을 찾는 나. 그 후에 떠오른다. 맞다, 지금 파는 거 내 무덤이었지? 한때 '단 거[당거]'를 'Danger'로 표기해 읽는 농담이 유행했는데, 말장난이지만 뼈를 때린다.
바쁘니까 파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