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송(할머니 송) 뒷편 20m에 있는 할아버지 송 모습
오문수
수형이 아름답고 호랑이 전설을 품은 천년송은 수령이 8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노 거목으로 희귀성과 민속적 가치가 커 천연기념물(제424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할매(할머니) 송'은 높이 20m, 가슴높이의 둘레는 4.3m이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18m에 달한다. 20m 뒤에 있는 '한아시(할아버지) 송'은 세력이 할머니 송보다 못하다.
마을 주민들은 더 크고 오래된 할머니 송을 천년송이라 부르며 매년 정월 초사흘(1월 3일)에 당산제를 지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는 당산제의 제관으로 선발된 사람은 섣달 그믐날부터 외부 출입을 삼가고 뒷산 너머의 계곡(일명 산지쏘)에서 목욕 재계 한 후 옷 3벌을 마련, 각별히 근신을 한다고 한다.
제관은 사흘마다 목욕하고(음력 1월 1일부터는 3일간 날마다) 옷 세 벌을 마련하여 목욕하면서 갈아입고, 목욕하고 와서 갈아입고, 화장실 갈 때 따로 입었다. 음력 1월 3일 아침 제를 지내며, 밥해 놓은 것을 한지 종이에 싸서 소나무 밑에 묻고, 왼 새끼줄을 꼬아 소나무에 세 바퀴 놓고, 동동주를 세 군데에 나누어 뿌린다. 동행했던 남원향토사학자 김용근씨는 구전되어오는 천년송 전설을 들려줬다.
와운마을이 당산제를 지낸 이유
조선시대를 살았던 운봉 사람들은 조상들처럼 서리태 콩을 짊어지고 벽소령과 화개재를 넘어 화개장터로 가서 소금으로 교환해 왔다. 화개장터의 유명했던 서리태콩 두부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30명으로 이뤄진 운봉현의 소금무데미(보부상 무리)들은 지리산 소금길을 넘나들면서 소금과 서리태 콩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소금무데미 선창꾼은 훗날 동편제 소리꾼이 되기도 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호랑이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장치가 호랑굿 당산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