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생활 중에도 항상 공부를 하였고, 힘든 와중에도 밝게 웃던 은찬이.
이보연
엄마, 나는 소아혈액종양내과나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요. 내가 많이 아파봐서 아픈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니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백혈병이 세 번째 재발했던 2020년 2월,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열두 살 은찬이가 했던 말입니다.
제 아들 은찬이는 2014년 여섯 살에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2년 6개월 표준항암치료를 마쳤지만 병은 재발하였고, 더 센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조혈모세포이식까지 받았음에도 재작년 2월 또 다시 재발했습니다.
뇌출혈, 패혈증 같은 응급상황으로 중환자실을 오가기도 했고,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며 생사를 오갔던 시간들까지 6년째 고통스러운 치료를 이어왔던 아이에게 '세 번째 재발'은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텐데, 은찬이는 어른보다도 어른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이고는 그 와중에도 '나와 같이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병상에서도 고3처럼 묵묵히 공부했습니다.
백혈병이 세 번째 재발한 당시 국내에는 아이를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긴 치료로 쇄약해진 은찬이의 몸은 풍전등화와도 같아 다시 이식을 받는 것도, 독한 항암치료를 계속 받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해외에는 은찬이와 같은 아이들의 82%가 치료되는 '킴리아'라는 신약이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첨단재생바이오법 시행 전이어서 사용할 수가 없었고,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시기여서 해외에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은찬이는 국내에서 킴리아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첨단재생바이오법이 시행되는 2020년 8월이면 방법이 생길 거라고 기대했지만, 해가 바뀌어 2021년 3월이 되어서야 겨우 킴리아는 식약처 허가를 받았고, 그마저도 바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첨단바이오신약인 킴리아를 사용할 수 있는 기반사항 등에 대한 허가를 받지 않았고, 약의 가격조차 정해지지 않아 신약이 허가된 이후에도 아이는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지 모를 공무원과 전문가 분들이 책상 앞에서 약을 사용할 수 있는 사항들을 허가하고 약가를 정하느라 저울질을 할 동안, 우리 은찬이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완치를 꿈꾸던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