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기념사업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조지 오글 목사(오른쪽)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민주화기념사업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조지 오글 목사(오른쪽)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
오마이뉴스 손병관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은 전방위적이었다. 불의가 행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악행을 규탄했다. 12월 14일 정부는 조지 오글 목사에게 인혁당사건 관련자 구명운동과 구속자 가족들의 지원 등을 문제삼아 강제추방명령을 내렸다.
이와 관련 사제단은 12월 16일 성명을 발표, 정부는 오글 목사의 재입국을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자유언론실천운동이 계속되자 정부가 신문광고를 중단시키는 탄압을 자행했다. 이에 사제단은 12월 30일 자유언론회복기도회를 열어 정부의 비열한 탄압을 중지할 것과 언론계의 분발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해가 바뀐 1975년이 되었다. 1월 9일 사제단은 전국의 사제와 신부 및 신도 등 2천여 명이 명동성당에 모여 인권과 민주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국민의 자유, 인권회복을 위해 현 정권 퇴진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사제단이 주최하는 행사에는 어느 곳이나 기동경찰이 신도는 물론 시민들의 출입을 제지하였다. 그럼에도 행사는 꾸준히 이어지고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가 되고 있었다. 이 시기 명동성당의 스케치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1백여 명의 사제가(많을 때는 3백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제의를 입고 장엄한 행렬을 이루며 입당한다. 이미 성당에는 수도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로, 중앙통로를 제외하고는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차 있다. 밖에도 역시 미처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군중을이루어 기대와 흥분으로 다소 들떠 있다. 제1부 미사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어서 제2부 기도회가 시작된다. 신자이건 아니건 벅찬 감동과 엄숙으로 누구 한 사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불의에 짓밟히고서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의 기도가 있고, 어제 오늘 있었던 독재 권력의 만행을 고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언문이 낭독될 때도 있다. 기도회가 끝나고 난 후 이미 어둠이 내린 가운데 진행된 성모동굴까지의 촛불행진은 얼마나 숙연했던가. (주석 4)
주석
2> 이상우, <유신치하 종교계의 반체제운동>, <신동아>, 1986년 5월호.
3> <최일남이 만난 사람, 함세웅 신부>, <신동아>, 1985년 2월호.
4> 김정남, <진실, 광장에 서다>, 57쪽, 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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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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