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21년 10월 4일 경북 군위군 의흥면 황금 들녘에서 휴일임에도 농부들이 부지런히 가을걷이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일과 11일에 열린 두 차례 대통령선거 4자 TV토론에서 농촌·농업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 기후위기를 얘기하고 안보를 주제로 토론하면서도, 국민들의 '먹을 것'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사드가 없어도 국민들이 살 수 있지만, 먹을 것이 없으면 그 국가공동체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곧 국민이고,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라면, 앞으로의 토론에서는 농업·농촌문제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요소수가 아니라 식량수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가 식량위기를 낳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후는 이제 일상이 됐고, 그로 인한 홍수, 가뭄, 병충해 등이 농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도 상승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020년 1월 102.5에서 2022년 1월 135.7로 상승했다. 특히 오른 것은 쌀, 밀, 옥수수 등의 곡물가격지수다. 세계곡물가격지수는 2020년 1월의 100.7에서 2022년 1월에는 140.6까지 올랐다. 2년 사이에 40% 가까이 오른 것이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식량수급에 불안요인들이 커지고 있다. 최근 옥수수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반구에서 계속된 가뭄으로 가격이 상승했고, 쌀은 주요 공급국의 저조한 수확량과 아시아 국가들의 꾸준한 구매로 가격이 올랐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이다.
평소에 이런 수치들을 챙겨보지 않던 필자가 이렇게 세계식량가격지수를 살펴보는 이유는 심각한 식량위기가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닥칠 경우 곡물자급률 21.0%(가축이 먹는 것 포함), 식량자급률 45.8%(2019년 기준)에 불과한 대한민국은 대처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수입해서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최근에 있었던 요소수 사태를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요소수 수입에 차질이 생기자 한동안 국가적인 혼란을 겪은 바 있다. 만약 요소수가 아니라 '식량' 수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건가? 요소수를 구하기 위한 줄이 아니라, 식량을 구하기 위한 줄이 곳곳에 늘어선다면? 아마도 그런 상태가 한두 달만 지속돼도 아비규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농지 줄어드는데 식량자급률 올리겠다니
대선후보들도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식량자급률을 올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식량자급률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1%의 곡물자급률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목표치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장 농사 지을 농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식량자급률을 올린다는 말인가.
식량자급률을 올리려면 당연히 농사 지을 땅과 농사 지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농지는 1975년 223만ha에서 2000년 189만ha를 거쳐, 2020년에는 156만ha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곡물자급률 목표 32%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농지는 175만ha로 추산됐다. 그런데 농지가 계속 줄어들다 보니, 이제는 곡물자급률 32%를 달성하기에도 농지가 19만ha나 부족한 상황이다. 지금 상황을 방치해두면 앞으로도 농지가 계속 줄어들 것이다.
국내에 필요한 곡물의 3분의 1을 확보하기에도 농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로부터 곡물수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게 자명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선후보들은 줄어드는 농지를 보전하고 추가로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
더욱 심각한 건 우량농지를 보전하기 위해 지정된 농업진흥지역조차도 각종 개발사업 명목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2000년부터 2019년 사이에 농업진흥지역 면적도 16만1천ha나 줄어들었다.
이렇게 농지가 줄어드는 동안 늘어난 것은 도로, 대지, 공장용지이다. 1976년부터 2020년까지 농지는 줄어든 반면, 도로는 21만ha, 대지는 14만ha, 공장용지는 10만ha가 늘어났다.
그동안에는 도로, 주택, 공장이 필요해서 지었다고 해도,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도로건설에 예산을 쏟아붓고 농지와 임야를 파괴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해서 기후위기 시대에 어떻게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농촌지역에 민간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산업단지를 건설하게 하면서 농지와 마을을 파괴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