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아버지에게서 구정을 앞두고 문자가 왔다. '금년 설 모임은 각자 집에서 보내자꾸나. 오미크론도 극성이니.' 아버지에게서 이런 문자를 받은 지가 벌써 2년째다. 금세 수그러들겠지 했던 코로나19로 두 해전부터 명절에 부모님을 뵙지 못했다. 지방에 살고 있는 나는 명절이 공식적인 상경 일이건만 몇 번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명절을 지내면 구순을 맞으신다. 두 살 아래인 엄마와 지금 사는 동네에서 30년을 넘게 사셨다.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바깥출입이 뜸해진 엄마가 급격히 기운을 잃으셨다.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아버지와 달리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엄마는 점차 체력이 떨어지고 집안일을 힘들어했다. 엄마 입에서 실버타운 이야기가 나왔다. 이전에도 간혹 나왔던 실버타운이었지만 엄마가 이번엔 꼭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 코로나로 모이지 못했던 4형제가 모이게 됐다. 평소 자연인을 꿈꾸며 전원생활을 원했던 아버지도 꿈을 내려놓고 엄마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거환경을 찾으셨다. 몇 군데의 실버타운을 방문했지만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에게 실버타운 거주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데 형제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던 중 형부가 돌아가시고 몇 년 전 딸 둘을 출가시키고 혼자 사는 언니가 부모님 집으로 들어와 돌봐드리겠다고 했다. 엄마 아버지는 지금 사는 집에서 할머니의 마지막 10년을 함께 했다. 아버지 엄마 모두 환갑을 넘기고 할머니를 모신 셈이다. 환갑이 지난 언니가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뿌려놓은 삶의 모습이 전승되는구나 했다. '기브 엔 테이크'라는 세상 속 계산기를 들이밀지 않아도 할머니의 노후를 정성껏 돌봐드린 엄마 아버지가 자식의 봉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싶었다. 그리고 '선한 끝'이 있다는 말도 실감 났다. 구정을 일주일 앞두고 남편과 나는 엄마 아버지를 뵈러 상경했다. 마스크를 벗지 않기 위해 점심은 휴게실에서 먹고 아버지 집에서 머무는 4시간 동안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4시간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귀가 어두워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주로 듣기만 했던 아버지가 둘째 딸과 사위와 만난 자리에서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사후 장기기증과 연명치료 거부, 복지기관 기부 등 이전부터 해 오시던 이야기들을 반복하셨다. 엄마는 '장례비용으로 준비했다'며 통장도 내 보이셨다. 두 분 다 삶의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봉사하던 성당의 사진집을 보며 우리보다 더 젊었던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도 보았다. 한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드라마였다. 집을 나서는 내 손에 엄마는 세뱃돈을 들려주셨다. 몇 해 전부터 챙겨 주시는 부모님의 세뱃돈에 나는 어린 시절의 딸로 돌아간 듯 응석이 부리고 싶어졌다. 다른 손엔 구부러진 허리로 담그신 봄 동 겉절이도 들려 주셨다. 구정인 오늘 아침 아버지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항상 기억하고 훈련하는 삶이 되도록 하여라. 이것이 아버지가 주는 설빔이다.' 설빔이란 말이 신선했다. 설빔이란 어려웠던 시절에도 설을 맞이하여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입히기 위해 새로 장만하는 옷이나 신발 따위를 이른다고 했다. 아버지는 올해에도 삶의 좋은 습관들을 늘 기억하고 몸에 베이도록 훈련하라는 덕담을 주셨다. 자칫 무거워질 조언을 설빔이라 표현하신 아버지의 언어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옷을 입듯 가까이해야 할 '기억과 훈련'이라는 설빔을 보내주신 구순의 아버지께 증손주가 드리는 세배 영상을 보내 드렸다. ▲설빔을 보내주신 구순의 아버지께 증손주의 세배 영상을 보내 드렸다.오안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구정 #명절 #아버지 #설빔 #세배 추천12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글 오안라 (anrao) 내방 구독하기 삶의 반짝거리는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일상안에 숨어있는 선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문장을 짓습니다. 글쓰기는 일상을 대하는 나의 예의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4남매가 직접 쓴 엄마의 구순 기념 책, 눈물 나서 혼났습니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용산 '친오빠 해명'에 야권 "친오빠면 더 치명적 국정농단"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AD AD AD 인기기사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5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아버지의 설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낮엔 손주 보고 밤엔 대리운전... 피곤하지 않습니다" '아빠 어디야?'가 불러온 비극... 한국도 예외 아니다 윤핵관과 시한부 장관의 조합... 국가에 재앙 몰고 왔다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