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동물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는다고 했다.
조찬현
허 화백은 40대 후반 나이에 그림에 입문했다. 사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려움도 많았다. 그림 그리기 시작한 지 28년 여, 하지만 민화를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늦깎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여기는 시골이라 너무 적적한 거예요. 이웃도, 할 일도 없고... 돈 버는 일보다는 예술적인 것을 더 좋아하긴 좋아했어요"라며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00여 점 작품... 자신의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게 꿈
이제 나이는 70대 중반으로 치닫고 있다. 눈에 안 보이는 그런 것보다는 어떤 가시적인 것이 필요할 나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통해 뭔가를 좀 남기고 싶었다.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란다. "뭔가 남기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모은 것이 100여 점 되는데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게 꿈이에요."
허 화백의 작품에는 불성이 담겨있다. 호랑이와 연꽃, 관음보살, 절집의 추녀 등이 언뜻언뜻 보인다. 현재 작업 중인 호랑이 작품에도 연꽃과 관음보살이 담겼다.
한 달여 전 시작한 호랑이 작품은 아직 미완성이다. "밑그림에 바탕 색깔만 좀 칠해 놨네요. 이제 눈도 부각시켜야 하고, 수염도 그려야 하고, 털을 일일이 다 세필로 붓질을 해서 털 표현해야 하거든요. 제가 부처님을 좋아해서요. 부처님의 뜻이 밑바탕이 돼 있었거든요."
여수 시내에서 살다가 한적한 바닷가 임포마을이 좋아 이곳에 왔다는 허 화백은 호랑이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믿는다. 포효하는 호랑이의 용맹성이 아닌 자비 또한 호랑이를 통해서 느낀다고 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이해하는 자비를 느껴요. 호랑이라고 그래서 꼭 무섭다, 이런 것만은 아니잖아요."
호랑이는 영물이다. 사납고 용맹한 맹수이기도 하지만 민화에서는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때로는 은혜를 아는 선한 동물로 그려지곤 한다.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려면 앞으로도 한 달여를 더 기다려야 한다. "80호 그리려면 두 달은 걸려요, 부지런히 해도."
절집이 좋아서 여수 향일암 근처로 삶의 터전 옮겨
호랑이 그림에 연연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나약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갖지 못한 걸 호랑이를 통해 얻을 수 있다며 속내를 은근 드러내 보였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호랑이가 갖고 있어서, 내 바람이랄까 그런 거 있잖아요. 나는 너무너무 나약해요."
생업에 종사하다 28년째 이어지는 작품활동은 그저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아서다. 절집이 좋아서 삶의 터전도 향일암과 가까운 마을로 옮겼다.
"전에 젊었을 때는 저 양반(남편)이랑 같이 시내에서 표구점을 했어요. 이제 부처님 품으로 들어오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시내 화랑을 접고... 그림에 목탁 하나라도, 절집 지붕 추녀 끝이라도 집어넣어야지만 내가 마음이 편해요."